내용으로 건너뛰기
마이여행로그
사용자 도구
등록
로그인
사이트 도구
검색
도구
문서 보기
이전 판
역링크
최근 바뀜
미디어 관리자
사이트맵
등록
로그인
>
최근 바뀜
미디어 관리자
사이트맵
추적:
•
대구_구_동촌역사
•
창원_성흥사_대웅전
•
인조별서유기비
•
달성_용연사_자운문
•
철원_얼음창고
•
연산_화악리의_오계
•
계봉사오층석탑
•
금암기적비
•
평해북천교비
•
고산리_등명대
대한민국:국가유산:양주_회암사지
이 문서는 읽기 전용입니다. 원본을 볼 수는 있지만 바꿀 수는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관리자에게 문의하세요.
====== 양주 회암사지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1625461.jpg?400|양주 회암사지 }} || | **종목** | 사적 (1964년 06월 10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사찰 | | **시대** | 고려 충숙왕<재>15년(1347) | | **소유** | 양주시 등 | | **관리** | 양주시 | | **소재지** | 경기 양주시 회암동 산14번지 | ===== 소개 ===== 고려 충숙왕 15년(1328)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이 처음 지었다는 회암사가 있던 자리이다. 그러나 회암사가 지어지기 이전에도 이 곳에는 이미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전기 이색이 지은『천보산회암사수조기』에 의하면, 고려 우왕 2년(1376) 지공의 제자 나옹이 “이곳에 절을 지으면 불법이 크게 번성한다”는 말을 믿고 절을 크게 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조선 전기까지도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고 하는데, 태조 이성계는 나옹의 제자이면서 자신의 스승인 무학대사를 이 절에 머무르게 하였고, 왕위를 물려준 뒤에는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하기도 했다. 성종 때는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의 명에 따라 절을 크게 넓히는데 13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 후 명종 때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전국 제일의 사찰이 되었다가, 문정왕후가 죽은 뒤에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절이 불태워졌다. 이 절이 있던 자리에서 500m 정도 올라가면 지금의 회암사가 있는데, 그 부근에는 중요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시대에 세운 나옹의 행적을 새긴 회암사지선각왕사비(보물)를 비롯하여, 지공의 부도 및 석등(경기도유형문화유산)·회암사지부도(보물)·나옹의 부도 및 석등(경기도유형문화유산)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쌍사자석등(보물)·무학대사비(경기도유형유산)·회암사지부도탑(경기도유형유산)·어사대비(경기도유형문화유산)·맷돌(경기도민속문화유산)과 당간지주, 건물의 초석들이 남아있다. 이 사찰은 평지가 아닌 산간지방에 위치하면서도 평지에 있는 절에서 볼수있는 남회랑을 만든 점에서 고려시대의 궁궐이나 사찰 배치형식을 보이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b>※(회암사지 → 양주 회암사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b> {{tag>국가유산 문화재}}
대한민국/국가유산/양주_회암사지.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02 04:53
저자
sh
문서 도구
문서 보기
이전 판
역링크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