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으로 건너뛰기
마이여행로그
사용자 도구
등록
로그인
사이트 도구
검색
도구
문서 보기
이전 판
역링크
최근 바뀜
미디어 관리자
사이트맵
등록
로그인
>
최근 바뀜
미디어 관리자
사이트맵
추적:
대한민국:국가유산:송자대전판
이 문서는 읽기 전용입니다. 원본을 볼 수는 있지만 바꿀 수는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관리자에게 문의하세요.
====== 송자대전판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2023030815200000.JPG?400|송자대전판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1989년 03월 18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목판각류 / 판목류 | | **시대** | 근대 | | **소유** | 송*** | | **관리** | 우암사적공원관리소 | | **소재지** | 대전광역시 동구 충정로 53 (가양동, 남간정사) | ===== 소개 ===== 이 목판은 조선 후기의 대유학자 우암 송시열(1607∼1689) 의 문집과 연보 등을 모아 만든 『송자대전』의 목판으로 총 11,023판이다. 송시열은 김장생의 문하생으로 힘있고 논리적인 문장과 서체에 뛰어났고 평생 주자학연구에 몰두하여 율곡 이이의 학통을 잇는 기호학파의 주류이었다. 여러 관직을 거쳐 좌의정까지 오르지만 낙향과 유배, 재기용과 은거를 거듭하며 결국은 남인들에 의해 사약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우암문집』의 초판은 1717년(숙종 43)에 민진후가 임금의 명을 받아 교서관에서 금속활자로 간행하였으며, 그 후 정조 즉위 초에 전서간행의 어명이 떨어져 글을 수집하였고, 옛 책과 합쳐 그 목판본이 1787년(정조 11)에 평안감영에서 책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첫권과 연보는 서울의 교정소에서 별도로 간행되었으며, 총 215권 102책의 전서(全書)를 완성하여 『송자대전』이라 이름하였다. 송자대전책판은 1819년(순조 19)에 장판각을 지어 보관하였으나 1907년에 정미7조약에 반대하여 의병이 궐기하자, 일본군은 장판각이 있던 환장사가 의병의 유숙처라는 이유로 방화, 이로 인해 소실되었다. 현재 우암사적공원 장판각 내에 소장된 목판은 1920년대에 송시열의 후손과 유림들이 다시 간행한 것이다. 이 때 『송서습유』4책과 『속습유』2책을 함께 간행함으로써 『송자대전』은 총 108책에 달하게 되었다. {{tag>국가유산 문화재}}
대한민국/국가유산/송자대전판.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02 04:51
저자
sh
문서 도구
문서 보기
이전 판
역링크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