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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부여_능산리사지_석조사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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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national_treasure/1612310.jpg?400|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 || | **종목** | 국보 (1996년 05월 30일 지정) | | **분류** | 유물 / 불교공예 / 사리장치 / 사리장치 | | **시대** | 백제시대(567년) | | **소유** | 국유 | | **관리** | [[대한민국:박물관:국립부여박물관|국립부여박물관]] | | **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국립부여박물관 (동남리,국립부여박물관) | ===== 소개 ===== 백제 때 사리를 보관하는 용기로, 능산리 절터의 중앙부에 자리한 목탑 자리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출토 당시 이미 사리감이 훼손된 상태로 사리 용기는 없었다. 사리감은 위쪽은 원형, 아래쪽은 판판한 터널형으로 높이 74㎝, 가로·세로 50㎝이다. 감실 내부의 크기는 높이 45㎝ 정도로 파내었으며, 내부에 사리 장치를 놓고 문을 설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턱이 마련되어 있다. 감실의 좌·우 양 쪽에 각각 중국 남북조 시대의 서체인 예서(隸書)풍의 글자가 10자씩 새겨져 있다. 명문(銘文)에 의하면 성왕(聖王)의 아들로 554년 왕위에 오른 창왕(昌王)[위덕왕(威德王)]에 의해 567년 만들어 졌으며, 성왕(聖王)의 따님이자 창왕(昌王)의 여자 형제인 공주가 사리를 공양하였다는 내용으로 파악된다. 이 사리감은 백제 역사 연구에 새로운 금석문 자료로서 백제와 중국과의 문화교류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사리를 봉안한 연대와 공양자가 분명하고, 백제 절터로서는 절의 창건연대가 당시의 유물에 의해 최초로 밝혀진 작품으로서 그 중요성이 크다. {{tag>국가유산 문화재}}
대한민국/국가유산/부여_능산리사지_석조사리감.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02 04:50
저자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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