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으로 건너뛰기
마이여행로그
사용자 도구
등록
로그인
사이트 도구
검색
도구
문서 보기
이전 판
역링크
최근 바뀜
미디어 관리자
사이트맵
등록
로그인
>
최근 바뀜
미디어 관리자
사이트맵
추적:
•
신길동
•
검암경서동
•
선흘리백서향및변산일엽군락
대한민국:국가유산:보은_계당과_계정
이 문서는 읽기 전용입니다. 원본을 볼 수는 있지만 바꿀 수는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관리자에게 문의하세요.
====== 보은 계당과 계정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2020033116400700.jpg?400|보은 계당과 계정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19년 02월 01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원 | | **시대** | 1815년(1982년 중수) | | **소유** | 화*** | | **관리** | 화*** | | **소재지** | 충청북도 보은군 | ===== 소개 ===== 계당(溪堂)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최흥림(崔興霖, 1506~1581)이 낙향해 은거하며 공부했던 건물이다. 최흥림의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현좌(賢佐), 호는 계당(溪堂)이다. 최흥림은 명종 1년(1545)에 을사사화로 많은 사림(士林)들이 화를 입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보은으로 낙향하여 줄곧 이곳에 은거하였다. 이곳에서 성운(成運), 조식(曺植), 성제원(成悌元) 등과 교류하며 학문을 닦았고, 후학을 가르쳤다. 이곳은 순조 15년(1815)에 금화서원이 창건되자 강당으로 사용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종도리(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 장여(도리 밑에서 도리를 받치고 있는 길고 모진 나무)에 “단기 사삼십오년 임술 팔월 십칠일 기미 미시 입주상량 술좌(檀紀四三十五年壬戌八月十七日己未未時立柱上樑戌座)”라는 상량문을 통해 1982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계정(溪庭)은 금적산(652m) 정상부에서 내려오는 계곡을 이용한 자연 정원이다. 폭포와 자연 괴석 등 자연의 모습을 최대한 활용하였으며, 계당 앞마당에는 바위를 파내어 물길을 만들고 계곡수를 끌어들여 풍류를 느끼게 했다. 충북 지역에서는 드물게 자연환경을 활용한 유교 문화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된다. {{tag>국가유산 문화재}}
대한민국/국가유산/보은_계당과_계정.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02 04:54
저자
sh
문서 도구
문서 보기
이전 판
역링크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