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으로 건너뛰기
마이여행로그
사용자 도구
등록
로그인
사이트 도구
검색
도구
문서 보기
이전 판
역링크
최근 바뀜
미디어 관리자
사이트맵
등록
로그인
>
최근 바뀜
미디어 관리자
사이트맵
추적:
•
삼학동
•
송동면
•
만석동
•
금왕읍
대한민국:국가유산:국새_제고지보
이 문서는 읽기 전용입니다. 원본을 볼 수는 있지만 바꿀 수는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관리자에게 문의하세요.
====== 국새 제고지보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2021082414194800.jpg?400|국새 제고지보 }} || | **종목** | 보물 (2021년 08월 24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 **시대** | 1897년(광무1) | | **소유** | 국유 | | **관리** | [[대한민국: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 ===== 소개 ===== ‘국새 제고지보’는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서 등극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백성에게 알리기 위한 문서 또는 고위직을 임명하는데 사용하기 위해 만든 대한제국 국새 10과 중 하나로 1897년 9월 19일에 보장(寶匠) 전흥길(全興吉) 등이 제작하였다. 전흥길은 1851년부터 1897년까지 47년간 금보 제작에 있어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 19세기 말의 대표적 보장(寶匠)이다. ‘제고(制誥)’는 ‘황제의 명령’을 뜻하기 때문에 이 국새는 조선왕실에서는 사용할 수 없고 황제로 칭한 대한제국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던 국새이다. 1946년 8월 15일 미군정이 총무처에 인계한 국새로, 1954년 6월 28일 총무처가 다시 국립중앙박물관에 인계하여 지금까지 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국새 제고지보’의 제작과정은『대례의궤(大禮儀軌)』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보새(寶璽)를 제작하기 위한 ‘책보조성소(冊寶造成所)’를 설치해 도제조 심순택(沈舜澤)의 책임 아래 전문서사관(篆文書寫官, 篆書를 전문으로 쓴 관리) 홍문관학사 민병석(閔丙奭)이 글씨를 썼으며, 보장(寶匠)을 비롯한 다수의 장인들이 10일 동안 제작하였다. 또한『보인부신총수』에 ‘국새 제고지보’의 형태와 재료, 치수 등의 도설이 수록되어 있어 이 유물이 대한제국 황제의 상징물로서 문서에 찍혀 실제 사용된 사례가 다수 확인된다. 이처럼 ‘국새 제고지보’는 제작 경위와 과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뒷받침된다는 점에서 유물이 가진 역사적ㆍ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국새 제고지보’의 형상을 보면, 손잡이는 용뉴(龍鈕)로서, 용 모양이다. 용의 정수리에는 점문이 있고 비늘이 있고, 머리에는 녹각뿔이 솟아있다. 코에는 여의두문이 있고, 입을 벌리고 이빨 2개가 아래로 돌출되었으며, 입 주위로 서기(瑞氣)가 보이며 여의주를 물고 있다. 몸 전체는 비늘이 덮었고, 등을 위로 솟구쳐 반원을 그리며 배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다. 여기에 다회로 꼰 보수(寶綬, 매듭)를 꿰게 되어 있으나 현재 보수는 없어진 상태이다. 동 유물은 대한제국 국새로서 조선 왕실의 보인들과 형식적으로 비교된다는 점에서 시대적 변화를 보여준다. 조선왕실의 보인이 거북형 귀뉴(龜鈕)인데 빈해 대한제국 국새로서 용뉴인 점, 용뉴의 받침대인 유대(鈕臺)를 마련하고 있는 점, 보면(寶面)의 사방 크기가 조선왕실 보인에 비해 사방 2cm 정도 커진 점, 보면의 글씨체가 조선 보인의 구첩전문(九疊篆)에서 대한제국 새보는 소전(小篆)으로 바뀐 점 등 여러 면에서 대한제국기 국새의 조형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국새 제고지보’는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물이며, 공예, 서예, 전각 분야에서도 당대 최고 수준의 문화적 역량이 담긴 문화유산이다. 향후 미확인된 대한제국 국새의 발견을 위한 근거자료로써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tag>국가유산 문화재}}
대한민국/국가유산/국새_제고지보.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02 04:50
저자
sh
문서 도구
문서 보기
이전 판
역링크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