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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구미_척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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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 척화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62382.jpg?400|구미 척화비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1985년 08월 05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 | **소유** | 국가 | | **관리** | 구미시 | | **소재지** | 경북 구미시 구포동 산52-1번지 | ===== 소개 ===== 척화비란 조선 고종 때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서양세력의 침략을 온 국민에게 경고하고자 서울 및 전국 각지의 도로변에 세우도록 한 비로, 이 비도 그 중의 하나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바위에 비문을 새겨 놓았으며, 비문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략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 밖에 없으나 화해를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니 자손만대에 경고하노라”라는 강한 경고 문구가 적혀있다. 고종 8년(1871) 전국에 동시에 세운 것으로, 고종 19년(1882)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대원군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납치된 후 세계 여러 나라들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대부분의 척화비들은 모두 철거되었으나, 이처럼 몇 기의 비들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 옛 역사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tag>국가유산 문화재}}
대한민국/국가유산/구미_척화비.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02 04:51
저자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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