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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경주_감은사지_동_서_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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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national_treasure/1612826.jpg?400|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 || | **종목** | 국보 (1962년 12월 20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 | **시대** | 통일신라시대 7세기 | | **소유** | 국유 | | **관리** | 경주시 | |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3, 55-9번지 | ===== 소개 ===== 감은사터 넓은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 쌍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옛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석탑으로 조성된 쌍탑가람으로는 최초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세운 절로, 동해 바닷가인 이 곳에 터를 잡았다. 문무왕은 생전에 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완공하였다. 이러한 호국사상은 탑에도 이어져 장중하고 엄숙하면서도 기백이 넘치는 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개의 부분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탑을 세운 시기는 신문왕 2년(682)으로,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쪽탑 3층 몸돌에서 금동 사리기(보물)와 금동 사리외함(보물)이 발견되었다. 경주에 있는 삼층석탑으로는 가장 거대하며,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모습은 실로 한국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tag>국가유산 문화재}}
대한민국/국가유산/경주_감은사지_동_서_삼층석탑.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02 04:49
저자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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