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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경상좌수영성_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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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좌수영성 남문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36649.jpg?400|경상좌수영성 남문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1972년 06월 26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시설 | | **시대** | 18년 | | **소유** | 부산광역시 수영구 | | **관리** | 부산광역시 수영구 | | **소재지** | 부산 수영구 수영성로 43 (수영동) | ===== 소개 ===== 조선시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성(慶尙左道 水軍節道使營城)의 남문으로 아치형 석문(石門)이다. 원래 수영성 남문 자리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옛 수영초등학교(현 신익아파트 자리) 정문으로 사용하기 위해 옮겨 왔다. 1962년 6월 30일 수영초등학교가 이전한 후 방치되어 있다가 1960년대 말 미군의 도움을 받아 현재의 위치인 수영사적공원 입구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에는 무관인 정3품의 경상좌도수군절도사(약칭 경상좌수사)가 주재하였으며, 낙동강의 동쪽에서 경주까지의 바다를 방어하는 총 책임을 맡고 있었다. 경상좌수영성 남문은 1692년(숙종 18) 경상좌수사 장우상(張宇相)이 경상좌수영성을 중수할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좌수영성에는 동문(영일문, 迎日門), 서문(호소문, 虎嘯門), 남문(주작문, 朱雀門), 북문(공진문, 拱辰門)의 사대문이 있었으며 사대문에는 각각 문루가 있었다. 성문은 일정한 시각에 폐문루(閉門樓)와 관해루(觀海樓)에 달아둔 북을 울리는 것을 신호로 열고 닫았다고 한다. 경상좌수영성 남문의 현재 상태는 앞뒤의 홍예(虹霓, 성문, 수문, 다리 등을 무지개 모양으로 쌓은 것)와 홍예기석(虹霓基石, 홍예석을 쌓기 위해 가장자리에 기둥처럼 놓은 돌)이 남아 있고, 홍예기석과 같은 높이의 성벽이 좌우 10m 정도 남아 있다. 전면 홍예기석 앞에는 같은 크기의 사각형 돌기둥 위에 박견(拍犬) 한 쌍이 양쪽에 나란히 서있다. 이러한 박견 형태의 석물이 성문 옆에 설치되어 있는 경우는 다른 지역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독특하다. 전면 좌측에는 수령 이하는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다. 오랜 세월에 홍예석이 조금씩 침하되어 붕괴될 우려가 있어 1993년 8월 해체․보수하였다. {{tag>국가유산 문화재}}
대한민국/국가유산/경상좌수영성_남문.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02 04:52
저자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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