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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거창_모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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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 모리재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42211.jpg?400|거창 모리재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1995년 05월 02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 | **시대** | 1641 | | **소유** | 정*** | | **관리** | 이*** | | **소재지** | 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73번지 | ===== 소개 ===== 모리재는 1637년 인조(仁祖)가 중국 청 태종 앞에 나가 항복하는 치욕적인 화의(和議)가 성립되자 척화파인 정온(鄭蘊)선생은 남한산성에서 자결을 시도했으나 전의(典醫)와 광주목사의 손에 구명된 후 낙향하여 죽을 때가지 은거했던 곳을 기념하여 유림들이 건립한 재사(齎舍)로 사당 · 모리재 · 서무 · 화엽루 · 내삼문 · 협문 등과 유허비 1기로 이루어져 있다. 정문으로 사용된 화엽루(花葉樓)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2층 누각으로, 자연석을 둥글게 다듬은 기둥을 세웠다. 또 화려한 팔작지붕의 처마가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방 처마 끝에는 받침기둥을 세워 지붕을 떠받쳤다. 본당인 모리재는 자연석 초석 위에 정면 6칸, 측면 2칸의 일(一)자로 된 팔작지붕의 건물로, 지역의 유림들이 모여 선생의 학문을 추모하며 공부하였던 곳이다. 모리재는 재실(齋室)로서 특이하게 남부 지방의 민가 형식을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규모도 매우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21년에 중수한 것이다. {{tag>국가유산 문화재}}
대한민국/국가유산/거창_모리재.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02 04:47
저자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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