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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흥국사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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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흥국사괘불 [2025/04/01 05:57] – 만듦 sh대한민국:국가유산:흥국사괘불 [2025/04/02 04:53]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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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국사괘불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39850.jpg?400|흥국사괘불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1972년 01월 29일 지정) |
 +| **분류** |  | 
 +| **시대** |  | 
 +| **소유** | 대*** |
 +| **관리** | 흥*** |
 +| **소재지** | 전남 여수시 흥국사길 160 (중흥동) | 
 +
 +===== 소개 =====
 +괘불이란 법회를 법당 안에서 개회할 수 없을 때에 옥외에 걸어놓고 의식을 행하는 걸개그림을 말한다.
 +
 + 이 괘불은 조선 인조 2년(1624) 계특대사가 사찰건물을 중건하여 대불사를 올릴 즈음에 화공으로 하여금 제작하게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규모가 큰 것으로, 가로 8.20m 세로 11.55m의 크기이며 괘불을 넣어두는 괘불함 역시 길이가 12m가 넘는다.
 +
 + 여느 괘불과는 달리 여래상이 아닌 보살상을 그렸는데, 보살상이면서 머리에는 보관을 썼고 몸체가 큰 키 모양의 광배를 가지고 있으며 두광을 둥근 원으로 그려 위엄을 나타냈다. 몸 전체에 칠한 짙은 적색의 옷 색깔은 임진왜란 이후 나타난 특징 중의 하나로, 이 그림이 조선 후기에 그려진 것임을 짐작하게 해 준다.
 +
 + 광배 둘레에 적색 및 황색과 녹색을 번갈아 배치하여 다양하면서도 화려하게 그리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데 이는 괘불을 회화적으로 나타내기보다는 부처님의 위엄을 나타내려고 고심한 흔적으로 보인다.
 +
 + 뒷면에는 제작연대와 함께 괘불을 그리는데 참여했던 화승들을 적어넣은 기록이 남아 있어, 영조 35년(1759)에 괘불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같은 건물 내에 있는 대웅전 후불탱화(보물 제 578호)의 제작연대보다 60여 년이 늦으며 선암사의 괘불보다도 6년 후에 제작된 것이다. 선암사 괘불을 그리는데 참여했던 쾌윤의 이름이 이 괘불의 기록에서도 보이고 있어 당시 불화제작을 담당했던 화공의 연구에도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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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