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대한민국:국가유산:화천용암리선사유적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링크

다음 판
이전 판
대한민국:국가유산:화천용암리선사유적 [2025/04/01 05:56] – 만듦 sh대한민국:국가유산:화천용암리선사유적 [2025/04/02 04:52] (현재) – 만듦 sh
줄 1: 줄 1:
 +====== 화천용암리선사유적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1648925.jpg?400|화천용암리선사유적 }} ||
 +| **종목** | 시도기념물 (2004년 01월 17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 / 육상유물산포지 / 선사유물 | 
 +| **시대** | 청동기시대 전기(B.C.10∼6C) | 
 +| **소유** | 국유 및 화천군 |
 +| **관리** | 화천군 |
 +| **소재지** | 강원 화천군 하남면 용암리 1121번지 외 34필지 | 
 +
 +===== 소개 =====
 +이 유적은 지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강원문화재연구소의 발굴 결과 집자리 176기, 수혈유구 32기, 굴립주 건물 14동, 토광묘 11기 등 유구의 수가 230여기가 넘어 국내 최고의 밀집도를 보여 주는 청동기시대의 집단 취락유적이다.
 +
 + 발굴유구 중 주거지는 상부 구조, 벽체, 출입구 시설 등이 확인되어 청동기시대의 가옥구조를 밝힐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였으며, 주거지들의 중복관계를 볼 때 화천군 하남면 위라리와 용암리의 하안 충적대지 상에 여러 기간 동안 형성된 취락의 변천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 출토유물은 박편의 일부를 갈아 인부를 만든 석기(박편석기)가 대량으로 출토되었고, 다양한 형태의 석부와 석촉을 비롯, 청동기시대의 유적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석기들이 완제품 또는 반제품의 형태로 출토되어 석기 제작과정 및 변화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
 + 이 유적의 시기는 앞으로 주거지와 출토유물에 대하여 종합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검토될 예정이지만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로 볼 때 청동기시대 전기의 유적으로, 그 중심시기는 기원전 9세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상한연대는 기원전 10세기경을 상회하는 것도 있을 것으로 보이며, 하한연대는 기원전 6세기경까지도 취락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
 + 따라서, 화천 용암리 일대에 형성된 청동기시대 취락은 최소한 기원전 10세기경부터 6세기 경까지 형성된 집단취락으로서 청동기시대 북한강유역의 생활문화양상과 주거발달사 연구, 청동기문화의 전파경로를 밝혀 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며, 동아시아에서도 유례가 드문 마을유적이라는 점에서 지정·보존가치가 크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