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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홍극가_묘_출토복식 [2025/04/02 04:50]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 | 대한민국:국가유산:홍극가_묘_출토복식 [2025/04/02 04:50] (현재) – 만듦 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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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홍극가 묘 출토복식 ====== |
|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imp_folklore_material/1634873.jpg?400|홍극가 묘 출토복식 }} || |
| | | **종목** | 국가민속문화유산 (1979년 01월 26일 지정) | |
| |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복식공예 / 의복 | |
| | | **시대** | 조선시대 | |
| | | **소유** | 안동대학교 | |
| | | **관리** | [[대한민국:박물관:안동대학교박물관|안동대학교박물관]] | |
| | | **소재지** | 경북 안동시 경동로 1375 (송천동,안동대학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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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개 ===== |
| | 1974년 안동댐의 건설로 근처의 묘를 이장할때 부림홍씨(缶林洪氏)의 14대조부인 홍극가(∼1670)의 무덤에서 출토된 수의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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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의란 윤달가운데 좋은 날을 골라 솔기나 매듭을 없이 하여 죽은 이가 편안히 저승길을 가기를 염원하며 지은 옷으로 여기서 발견된 수의는 중치막 1점, 도포 1점, 누비바지 1점, 버선 1족 등 총 4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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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치막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관복을 입을때 안에 받쳐 입었으나 일반인들은 외출복으로 사용하였던 지금의 두루마기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옆이나 뒤가 터져있는 옷이다. 이 옷은 옷깃이 곧고 소매는 넓으며 양 옆이 트여져 세 자락으로 되어있다. 길이 115㎝, 등솔에서 소매끝까지의 화장길이는 105.5㎝인 흰색의 무명옷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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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포는 사대부의 외출복으로 깃이 곧고, 양쪽 겨드랑이 아래를 다른 폭의 천으로 댄 무가 있으며 소매가 넓다. 허리부터 뒤 중심이 트여있고, 뒷자락이 하나 더 있어 말을 타거나 앉을 때 편하도록 되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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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지는 반쪽만이 남아있는데, 이는 후손들이 시신으로부터 의복 벗기는 것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찢어졌다고 한다. 겉감은 명주로, 안은 솜을 얇게두어 1㎝간격으로 누빈 겨울용 바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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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선 역시 무명으로 되어있으며 발등의 솔기부분인 수눅선이 직선형이면서 발등부분에서 모난 형태로 꺾여있다. 길이는 24.5㎝로 지금의 버선보다 짧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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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존에 출토된 수의 중에는 기운자국이 보이는 것도 있어 조선시대 평상복을 수의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수의 역시 직물이 귀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평상복으로 추정된다. 유물중 중치막이나 도포는 박장군의 옷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며, 바지는 당시의 것이 몇 점 전해지기는하나 명주에 솜을 넣고 정교하게 누빈 바지는 이것이 유일한 것으로 복식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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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정명칭 변경 : 국가민속문화유산 명칭변경계획에 따라「안동홍씨수의」에서 「홍극가묘출토복식」으로 명칭 변경 (2005. 2.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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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g>국가유산 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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