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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현풍곽씨십이정려각 [2025/04/01 05:55] – 만듦 sh | 대한민국:국가유산:현풍곽씨십이정려각 [2025/04/02 04:52] (현재) – 만듦 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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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현풍곽씨십이정려각 ====== |
|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59489.jpg?400|현풍곽씨십이정려각 }} || |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1995년 05월 12일 지정)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 |
| | | **시대** | | |
| | | **소유** | 현*** | |
| | | **관리** | 현*** | |
| | | **소재지** | 대구 달성군 현풍면 지리 1348-2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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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개 ===== |
| | 현풍 곽씨 집안의 유교 도덕에 기본이 되는 삼강(三綱)을 지킨 28인의 정려비로, 선조 31년(1598)부터 영조 때(재위 1567∼1608)까지 포상된 12명을 한 곳에 모시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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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에는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삼강을 잘 지키면 이를 국가에서 포상하며 기리도록 하였다. 한 마을의 한 성씨(곽씨)에서 12명의 포상자가 나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로서, 정려를 받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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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왜란 때 안음현감 곽준이 황석산성에서 두 아들과 같이 전사하게 되자 며느리와 출가한 딸이 남편을 따라 자결하였기에 선조가 정려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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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재훈의 아들 4형제가 임진왜란 때 병환 중에 있는 아버지를 왜적으로부터 보호하였기에 선조가 정려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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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재기의 부인 광주 이씨는 임진왜란 때 왜병을 만나자 순결을 지키기 위해 물에 빠져 죽었기에 선조가 정려했고, 곽홍원의 부인 밀양 박씨는 강도가 들어와 남편을 해치려 하자 죽음으로써 남편을 보호하였기에 현종이 정려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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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수영의 부인 안동권씨는 남편이 병으로 위독하게 되자 자신이 대신 죽기를 기원했으나, 남편이 죽게 되자 먹지 않고 따라 죽게 되니 현종이 정려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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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물은 앞면 12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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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려각 안에는 2개의 비석과 12개의 현판이 있다. 건물과 현판은 최근 것이나, 12정려각은 그 유례가 흔치 않은 것으로 중요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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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g>국가유산 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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