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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해동청풍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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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동청풍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1654534.jpg?400|해동청풍비 }} ||
 +| **종목** | 시도기념물 (1990년 08월 07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일제강점기 | 
 +| **소유** | 장*** |
 +| **관리** | 장*** |
 +| **소재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 478-2 | 
 +
 +===== 소개 =====
 +전국 유림들에게 항일의식을 드높인 자하 장기석 선생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
 + 장기석(1860∼1911)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몹시 가난하여 공부를 하지 못하다 39세의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여 43세에 학문을 두루 통달하였다. 그 뒤 후진양성을 위한 교육에 힘썼으며, 일제 때 경찰서장으로 부터 경축식에 참석할 것을 강요받았으나 이를 거절하여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곳에서 단식을 시작하였고 의식을 잃어 일본경찰들이 음식을 먹이려 하자 그릇으로 서장을 때려 옥중에서 생을 마치었다.
 +
 + 비는 평평한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운 간단한 형태이다. 비문은 심산 김창숙이 글을 짓고 백범 김구가 글씨를 썼다. 1936년 전국 유림에서 뜻을 모아 세웠으나 그 이듬해에 일제에 의해 파괴되어 버려진 것을, 광복 후 조각들을 찾아 모아 다시 세웠다. 비 옆에는 1937년 일본경찰이 비를 깨부수려 할때 목숨을 끊어 이에 항거한 부인 박씨를 기리는 비가 함께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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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