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해동제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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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해동제국기 [2025/04/02 04:47]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 | 대한민국:국가유산:해동제국기 [2025/04/02 04:47] (현재) – 만듦 s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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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해동제국기 ====== | ||
| + | | {{ http:// | ||
|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10년 10월 07일 지정) | | ||
| + | |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 전적류 / 전적류 | | ||
| + | | **시대** | | | ||
| + | | **소유** | 국립한글박물관 | | ||
| + | | **관리** | [[대한민국: | ||
| +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9 (용산동6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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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해동제국기》는 1443년(세종 25)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일본에 다녀온 신숙주(申叔舟 : 1417~1475)가 1471년(성종 2) 왕명을 받아 그가 직접 관찰한 일본의 정치·외교관계·사회·풍속·지리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 기록한 책으로 15세기의 한일관계와 일본 사회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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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와 같은 사료적 가치 때문에 1933년 조선사편수회에서 영인 간행하였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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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현재 국내에서 공개되어 전하는《해동제국기》의 간본으로는 5장 분량의 초주갑인자본(국립중앙도서관 소장)과 임진왜란 직후인 17세기 초(선조말기) 훈련도감에서 목활자로 간행한 을해자체 목활자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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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산군일기》를 보면 1501년(연산군 7) 1월 22일자 기사에 해동제국기와 관련된 기록이 있는데, 병조판서 이계동이 “류큐(琉球)의 풍토·인물·세대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므로 성희안으로 하여금 상세하게 물어서《해동제국기》의 끝에 이를 써서 후일에 대비할 것”을 요청하자 왕이 이를 따랐다는 내용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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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안숙자 소장본 제2책의 말미에도 “成化九年(1473년)九月初二日 啓”에 이어 류큐(琉球)의 지리와 풍속 등에 대한 내용과 어음번역(語音飜譯) 등이 5장에 걸쳐 추가되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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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33년에 조선사편수회에서 영인 간행한 《해동제국기》의 해설에 따르면 당시 “전하는 간본은 4종이 있었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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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런데, 임진왜란 직후인 17세기 초(선조말기)에는 훈련도감에서 병사들이 새긴 목활자로 여러 책을 찍어내었는데 이 책 역시 훈련도감에서 만든 (을해자체) 목활자로 찍어 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권말에 있는 어음번역의 우리말 표기는 조선사편수회에서 간행한 초주갑인자본 영인본에 수록된 어음번역과 서로 동일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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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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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안숙자 소장본의 《해동제국기》는 17세기에 간행된 을해자체 목활자본이기는 하지만 완전한 초주갑인자본이 발견되지 않고 있는 현재 가장 오래된《해동제국기》판본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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