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합천_해인사_법보전_목조비로자나불좌상_및_복장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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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 | ||
| + | | {{ http:// | ||
| + | | **종목** | 보물 (2012년 10월 30일 지정) | | ||
| + | |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목조 / 불상 | | ||
| + | | **시대** | | | ||
| + | | **소유** | 해인사 | | ||
| + | | **관리** | 해인사 | | ||
| + | | **소재지** |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길 132-13 (가야면, 해인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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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 말~고려 초에 제작된 목조불상으로 1m가 넘는 크기에, 조형성은 물론 조각적인 완성도까지 갖춘 작품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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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동글동글한 나발, 이상화된 얼굴과 당당한 신체 표현, 신체에 감기듯 팽팽하게 걸쳐 입은 편단우견의 착의형식과 더불어 치켜세운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쥔 지권인의 형태, 긴장감 넘치게 조각된 옷주름 등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제작된 불상들과 양식적으로 비교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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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복장유물로는 다라니, 발원문 그리고 후령통 등 여러 종류의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대부분 1167년경과 1490년의 중수 때 납입된 것이다. 특히 1490년에 납입된 후령통은 안립 절차에 입각하여 정확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 『조상경(造像經)』이 간행되기 이전에 이미 복장의식이 정립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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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특히 사씨(史氏) 일가에 의해 납입된 반야심경의 발원문은 1167년(고려 의종 21)에 불상에 대한 중수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자료여서 이 불상의 하한연대 결정에 결정적인 자료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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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밖에 1150년, 1156년, 1166년에 각기 판각한 『대비로자나성불경등일대성교중무상일승제경소설일체다라니』가 발견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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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복장물 가운데 3점의 조각보는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 조각보의 역사가 500년 이상 되었다는 것을 뒷받침해준다. 또한 저고리는 조선 초기의 홑저고리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후령통 내부의 오보병은 그 구성이 현재까지 알려진 바가 없는 독특한 방식을 갖추고 있어 직물사와 복장물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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