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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합천_주필각_월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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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천 주필각 ∙ 월화당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64253.jpg?400|합천 주필각 ∙ 월화당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1990년 01월 16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 
 +| **시대** | 1695년 중수 | 
 +| **소유** | 광주노씨문중 |
 +| **관리** | 광주노씨문중 |
 +| **소재지** | 경상남도 합천군 정토양림길 199 (적중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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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월화당 노극복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지내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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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극복은 조선 중기 학자로 어려서부터 문예가 뛰어났으며, 정온·심광세·임진무 등과 더불어 성리학을 깊게 연구하고 토론하였다. 그는 학식이 해박하여 인조(재위 1623∼1649)가 등용하였는데 벼슬이 이조정랑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벼슬보다는 학문에 뜻을 두고 있던 선생은 벼슬을 버리고 초계에 있는 고향집으로 내려와 학문에만 전념하니, 왕이 그의 집을 ‘월화당’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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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물을 언제 세웠는지 기록은 없지만 숙종 21년(1695)에 후손들이 고쳐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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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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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필각은 월화당 뒤쪽에 있는데, 인조가 말을 매어 놓았던 곳이라고 하며 역마가 머물던 곳이라고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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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