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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합천 묵와고택 ====== |
|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imp_folklore_material/1635914.jpg?400|합천 묵와고택 }} || |
| | | **종목** | 국가민속문화유산 (1984년 12월 24일 지정)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 |
| | | **시대** | 조선 선조 | |
| | | **소유** | 윤*** | |
| | | **관리** | 윤*** | |
| | | **소재지** | 경남 합천군 묘산면 화양안성길 150-6 (화양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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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개 ===== |
| | 이 고택은 가야산에서 뻗어 내린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속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선조 때에 선전관(宣箋官)을 역임하였던 묵와(默窩) 윤사성(尹思晟, 1557~1619)이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윤사성의 10대손인 독립운동가 만송(晩松) 윤중수(尹中洙, 1891~1931)의 생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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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간채의 가운데에 있는 솟을대문을 들어가면 ‘ㅜ’자형으로 동향한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의 우측에는 중문채가 있으며, 중문채를 들어서면 ‘ㄱ’자형의 안채가 있다. 안채 마당을 지나면 사당이 위치하고 사당은 사랑채 옆면의 협문을 이용하여 진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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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간에 집터를 잡아 양반집을 짓는다는 것은 드문 사례인데, 임진왜란 이후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선비들이 난을 피해 은거하고자 했던 생각과 풍수적 이상향을 찾고자 했던 조선 중기 선비들이 집터 선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성리학적 규율을 반영하여 자연적인 경사를 이용하였고, 짜임새 있는 건물 배치와 남녀 생활공간과 동선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특히 사랑채의 높은 누각식 마루는 조선시대 양반 주택의 권위와 품격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기둥과 대들보 등 목부재의 견실한 맞춤과 세련된 형식은 조선 중기 양반집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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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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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g>국가유산 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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