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한일_외교_관련서_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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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한일_외교_관련서_일괄 [2025/04/02 04:50]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 | 대한민국:국가유산:한일_외교_관련서_일괄 [2025/04/02 04:50] (현재) – 만듦 s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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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한일 외교 관련서 일괄 ====== | ||
| + | | {{ http:// | ||
| + | | **종목** | 시도등록문화유산 (2023년 11월 29일 지정) | | ||
| + | | **분류** | 등록문화유산 / 기타 / 동산 | | ||
| + | | **시대** | 1867~1909 | | ||
| + | | **소유** | 부*** | | ||
| + | | **관리** | 부*** | | ||
| + | | **소재지** | 부산광역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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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한일 외교 관련서 일괄’은 메이지 정부가 조선과의 관계를 기존의 ‘조공체제’가 아닌 ‘근대적’인 관계로 전환하는 한편, 「조일수호조규」 의 체결 이후 조선을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조선 정부와 교섭을 진행하던 시기에 생산된 문서들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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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첫째, 조선의 개항 과정에 대해 과거에는 일본의 강압의 의해 조선이 ‘불평등조약’을 어쩔 수 없이 체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설명되었으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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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둘째, 개항은 조선이 서구의 ‘근대’와 접촉하게 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부산항이 조선의 첫 번째 개항장으로 선택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초량에 일본의 공관인 왜관이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부산항은 개항 이전 조선과 일본을 매개하는 외교・교역의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첫 개항장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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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일 외교 관련서’는 모두 일본 측에서 간행한 자료로,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일본 측의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어 행간의 의미를 잘 읽어야 하는 한계는 있다. 하지만 개항 전후 조선과 일본 간에 외교문제로 비화되었던 여러 중요한 사건들을 다루면서 일본 관리와 동래부 관리가 교섭했던 내용, 지역사회에서 양국 거주민 간에 일어났던 사건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 일본과의 교섭에 응했던 조선의 입장이라든가 부산이라는 지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근대문서이다. 모두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에만 소장되어 있는 국내 유일본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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