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대한민국:국가유산:하동_쌍계사_진감선사탑비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링크

다음 판
이전 판
대한민국:국가유산:하동_쌍계사_진감선사탑비 [2025/04/01 06:01] – 만듦 sh대한민국:국가유산:하동_쌍계사_진감선사탑비 [2025/04/02 04:49] (현재) – 만듦 sh
줄 1: 줄 1:
 +======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national_treasure/1613019.jpg?400|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 ||
 +| **종목** | 국보 (1962년 12월 20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통일신라 정강왕2년(888) | 
 +| **소유** | 쌍계사 |
 +| **관리** | 쌍계사 |
 +| **소재지**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 쌍계사 (운수리) | 
 +
 +===== 소개 =====
 +통일신라 후기의 유명한 승려인 진감선사의 탑비이다. 진감선사(774∼850)는 불교 음악인 범패를 도입하여 널리 대중화시킨 인물로, 애장왕 5년(804)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흥덕왕 5년(830)에 귀국하여 높은 도덕과 법력으로 당시 왕들의 우러름을 받다가 77세의 나이로 쌍계사에서 입적하였다. 
 +
 + 비는 몸돌에 손상을 입긴 하였으나, 아래로는 거북받침돌을, 위로는 머릿돌을 고루 갖추고 있는 모습이다. 통일신라 후기의 탑비양식에 따라 거북받침돌은 머리가 용머리로 꾸며져 있으며, 등에는 6각의 무늬가 가득 채워져 있다. 등 중앙에는 비몸돌을 끼우도록 만든 비좌(碑座)가 큼지막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옆의 4면마다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직사각형의 몸돌은 여러 군데가 갈라져 있는 등 많이 손상된 상태이다. 머릿돌에는 구슬을 두고 다투는 용의 모습이 힘차게 표현되어 있고, 앞면 중앙에는 ‘해동고진감선사비’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다. 꼭대기에는 솟은 연꽃무늬위로 구슬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
 + 진성여왕 원년(887)에 세워진 것으로, 진감선사가 도를 닦던 옥천사를 ‘쌍계사’로 이름을 고친 후에 이 비를 세웠다 한다. 당시의 대표적인 문인이었던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것으로 유명한데, 특히 붓의 자연스런 흐름을 살려 생동감 있게 표현한 글씨는 최치원의 명성을 다시금 되새기게 할 만큼 뛰어나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