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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풍산_심씨_문정공파_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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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풍산_심씨_문정공파_묘역 [2025/04/02 04:55]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풍산_심씨_문정공파_묘역 [2025/04/02 04:55]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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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산 심씨 문정공파 묘역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2587831.jpg?400|풍산 심씨 문정공파 묘역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1991년 12월 24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기타 | 
 +| **시대** |  | 
 +| **소유** | 풍산심씨 대종회 |
 +| **관리** | 풍산심씨 대종회 |
 +| **소재지** | 서울 강서구 방화동 463-10, 463-13, 855, 산1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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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조선 중기의 문신 심정(14714∼1531)의 묘로, 묘역 안에는 그의 아들 심사손, 심사순, 손자 심수경 등 풍산 심씨 가문의 묘 60여 기가 함께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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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정은 연산군 1년(1495) 생원시에 합격한 뒤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506년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화천군(花川君)에 봉해졌다. 중종 14년(1519) 경빈 박씨를 통하여 조씨전국(趙氏專國)의 말을 궁중에 퍼뜨리고 왕을 움직여 기묘사화를 일으켜 결국 정권을 장악하기도 하였으나, 경주 박씨의 동궁 저주사건이 드러나서 강서로 귀양을 갔다가 이항·김극핍과 함께 신묘삼간(辛卯三奸)으로 지목되어 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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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정의 아들 심사손(1493∼1528)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중종 18년(1523) 비변사낭관으로서 서북면의 야인정벌에 공을 세워 많은 관직에 올랐다. 심사손의 아들 심수경(1516∼1599)은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명종 1년(1546) 문과에 장원급제 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명종 17년(1562) 중종의 묘를 옮길 때 경기도 관찰사로 나라에서 쓰던 큰 상여가 한강을 건너는 다리를 설치하지 않은 죄로 파직되었다. 그 뒤 대사헌과 8도 관찰사를 지내면서 청백리에 추천되었고 선조 31년(1598)에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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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산 심씨 묘 60여 기 중에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이 4분의 묘와 묘비, 상석 등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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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