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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포항_보경사_원진국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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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1620685.jpg?400|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 }} ||
 +| **종목** | 보물 (1963년 01월 21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고려시대 | 
 +| **소유** | 보경사 |
 +| **관리** | 보경사 |
 +| **소재지** |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 보경사 (중산리) | 
 +
 +===== 소개 =====
 +보경사에 있는 고려 중기의 승려 원진국사의 탑비이다.
 +
 + 원진국사(1171∼1221)는 13세에 승려가 되어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기도 하였고, 왕의 부름으로 보경사의 주지가 되었다.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그를 국사(國師)로 예우하고, 시호를 ‘원진’이라 내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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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모습으로, 비몸 윗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잘라 놓았는데, 이러한 모습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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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넓다란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거북받침돌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에는 6각형의 무늬마다 ‘왕(王)’자를 질서정연하게 새겨놓았으며, 등 중앙에는 연꽃을 둘러 새긴 네모난 받침대를 조각하여 비몸을 끼워두게 하였다. 비몸의 둘레에는 덩굴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 역시 고려 중기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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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문에는 원진국사의 생애와 행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은 당시의 문신이었던 이공로가 지었고, 김효인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 의하면, 비가 완성된 것은 고종 11년(1224)으로 원진이 입적한 지 3년 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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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