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대한민국:국가유산:포항_달전재사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링크

다음 판
이전 판
대한민국:국가유산:포항_달전재사 [2025/04/01 06:01] – 만듦 sh대한민국:국가유산:포항_달전재사 [2025/04/02 04:49] (현재) – 만듦 sh
줄 1: 줄 1:
 +====== 포항 달전재사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folklore_material/1658910.jpg?400|포항 달전재사 }} ||
 +| **종목** | 시도민속문화유산 (2012년 10월 22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 
 +| **시대** |  | 
 +| **소유** | 이*** |
 +| **관리** | 여*** |
 +| **소재지**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새마을로766번길 59 (연일읍) | 
 +
 +===== 소개 =====
 +원래는 승려들이 거주하였다고 전하는 건물이지만 현재는 조선 전기 문신인 이언적(1491∼1553) 선생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한 재실로 쓰고 있다.
 +
 + 그는 24세 때 문과에 급제한 뒤 이조정랑, 밀양부사를 거쳐 중종 25년(1530) 사간이 되었다. 그러나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며 벼슬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성리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김안로가 물러난 뒤 홍문관교리, 직제학이 되었고 전주부윤으로 재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어 그의 송덕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그 뒤 명종 2년(1547) 양재역 벽서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강계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저술을 남기며 생을 마쳤다. 그는 조광조·김굉필·정여창과 함께 동방 4현 중 한 분으로 손꼽히며 조선초 성리학의 성격과 방향을 정립한 선구자이다.
 +
 + 건물은 조선 태종 2년(1402)에 세운 건물이라고 하나 근거가 될만한 자료는 없다.
 +
 + 앞면 6칸·옆면 6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전체적으로 ㅁ자형 구조로 건물 뒤쪽에 누각 형태의 난간이 달린 마루가 있고, 좌우 측면에는 좁은 출입문을 두어 다른 재실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