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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평택용성리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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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택용성리성지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1647346.jpg?400|평택용성리성지 }} ||
 +| **종목** | 시도기념물 (2005년 10월 17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지 | 
 +| **시대** |  | 
 +| **소유** | 최병렬, 평택시 외27 |
 +| **관리** | 평택시 |
 +| **소재지** | 경기도 평택시 안중읍 용성리 462 | 
 +
 +===== 소개 =====
 +평택시 안중읍 용성리에 있다. 해발 30∼40m의 낮은 구릉지에 축조된 평지토성이다. 평면 형태는 북벽이 약간 짧은 사다리꼴 모양이다. 동벽 부분이 농수로 조성과정에서 파괴된 상태임을 고려하면 원래의 형태는 장방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의 둘레는 449m다. 성벽에는 3개의 문지와 5개의 치, 수구지 등이 있다. 성내에는 5개의 건물지가 확인되며, 성벽 바깥쪽에는 해자가 있었다.
 +
 +성벽은 자연 능선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낮은 곳을 성토하는 방식으로 쌓았다. 성벽은 바닥을 다듬고 점토와 마사토를 교대로 쌓고 다짐했다. 각각의 토층이 두께는 10∼50cm로 일반적인 고려시대의 토성에 비하여 두껍고 투박하다. 기단석열이나 내외피토루의 구분선이 확인되지 않는다. 성벽 기저부에서 대략 1.5m 간격으로 목주흔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용성리토성은 판축공법이 적용되지 않고, 목주를 세우고 성토 다짐하는 방식으로 토성벽을 구축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축성법을 고려하면 용성리토성은 조선시대에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용성리토성은 용성현의 향교가 있었던 것으로 전하는 것으로 보아, 용성현의 치소성이 이전되는 과정에서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성내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대부분 조선시대의 자기류나 도기류, 기와편 등이어서 주로 조선 시대 용성현의 읍성이나 창성(倉城) 등으로 운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