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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청주_영조_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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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청주_영조_태실 [2025/04/02 04:52]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청주_영조_태실 [2025/04/02 04:52]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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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주 영조 태실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1649949.jpg?400|청주 영조 태실 }} ||
 +| **종목** | 시도기념물 (1984년 12월 31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탄생지 | 
 +| **시대** |  | 
 +| **소유** | 청주시 |
 +| **관리** | 청주시 |
 +| **소재지** |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무성리 산 6-1 | 
 +
 +===== 소개 =====
 +조선 영조(재위 1724∼1776)의 태(胎)를 봉안하는 태실이 있던 곳이다.
 +
 + 조선 왕실에서는 태를 사람 신체 가운의 근원이라고 생각한 도교사상과 풍수지리설에 바탕을 두고, 왕자나 공주가 태어났을 때 태를 묻기 위해 태실도감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태를 봉안할 명당을 물색하고 안태사를 보내어 태를 안치하였다. 특히 다음 왕위를 이어갈 왕자나 왕세손 등의 태실은 석실을 만들어 보관하였다.
 +
 + 영조는 숙종의 아들로 1694년(숙종 20) 9월 13일에 숙빈최씨의 몸에서 태어나 1등 태봉인 이곳에 안태安胎되었는데 그가 왕위에 즉위하자 왕실의 예에 따라 1729년(영조 5)에 태실을 개봉축改封築하여 석물로 가봉加封하였다. 『충청도읍지』에는 이 태실이 지금의 낭성면 무성리인, 청주에서 동쪽으로 20리 떨어진 청주목 산내일동면 무쌍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
 +태실의 형태는 공주에 있는 숙종의 태실을 모방하여, 중앙에 2단으로 대석을 놓고 그 위에 구형의 태실석胎室石을 놓았다. 밑으로 사다리꼴 형태의 전석을 둘러 8각을 만들고 8각의 모서리에 우주석을 세웠다. 8면의 중앙에는 사각의 석주를 세운 뒤 육각의 장대석을 가로 얹은 돌난간을 둘렀다. 태실 앞에는 귀부龜趺와 비신을 세우고, 이수를 갖춘 태실비를 세웠다.
 +
 +비신의 앞면에는 “主上殿下胎室주상전하태실”라고 쓰여 있고, 뒷면에는 “雍正七年十月十四日建옹정7년10월14일건”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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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조태실은 나라에서 8명의 수호군을 두어 관리하였으나, 1928년에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전국에 있는 태실을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구실로 태항아리만 꺼내어 서울 창경궁으로 옮기면서 크게 파손되었다. 그 후 태실 자리에는 민간의 묘가 들어섰고, 태실비는 마을 사람들이 마을로 옮겨 세웠다. 1982년 청원군에서 지붕돌이 없는 상태로 태실을 복원하였다.
 +
 +또한 영조태실의 조성경위와 제반 사항을 소상하게 기록한 『영조태실석난간조배의궤英祖胎室石欄干造排儀軌』가 남아 있어 태실을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2016년 보물 조선왕조의궤(2016-11)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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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