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청주_여산송씨_정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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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청주_여산송씨_정려각 [2025/04/02 04:54]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 | 대한민국:국가유산:청주_여산송씨_정려각 [2025/04/02 04:54] (현재) – 만듦 s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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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청주 여산송씨 정려각 ====== | ||
| + | | {{ http:// | ||
| + | | **종목** | 시도기념물 (2011년 07월 29일 지정) | |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 | ||
| + | | **시대** | | | ||
| + | | **소유** | 여산송씨종중 | | ||
| + | | **관리** | 여산송씨종중 | | ||
| + | | **소재지** | 흥덕구 수의동 181-3번지 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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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임진왜란 때 동래성東萊城을 지키다 순절한 천곡 송상현(泉谷 宋象賢, 1551~1592)과 그 후손들의 가계 내에서 배출된 열녀, 효부의 정려旌閭이다. 송상현과 두 소실의 충렬각과 후손 밀양박씨密陽朴氏와 연일정씨延日鄭氏 효부각이 있어 일문삼려一門三閭를 이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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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충렬각은 송상현과 그의 소실로 함께 순절한 한금섬韓金蟾,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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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을 당시 동래부사로 왜적을 막은 송상현은 왜군이 길을 내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끝내 거부하고 순절을 택하였다. 이 일이 알려지며 신하들을 의심하던 왕의 오해를 바로 잡고, 명군의 참전을 이끌어냈다. 송상현의 두 소실 중 한금섬은 동래성이 함락될 순간 지붕에 올라 기와를 던지며 끝까지 저항하다 함께 순절하였다. 이양녀는 왜에 끌려가서도 끝까지 정절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정려가 1594년(선조 27) 처음 명정되어 1704년(숙종 30) 청주목 서강내일하면 강상리에 다시 세웠으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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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충렬각 양 옆에 위치한 두 효열각은 송현기(宋鉉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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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청주의 주요 성씨인 여산송씨의 입향入鄕과 세거世居 사실을 엿볼 수 있는 유적으로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송상현과 두 소실의 정절을 기린 충렬각과 후손 두 며느리의 효열각과 효부각은 여산송씨 천곡문중의 가풍과 조선 후기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 등을 살펴볼 수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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