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청주_삼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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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청주 삼월비 ====== | ||
| + | | {{ http:// | ||
|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1995년 06월 30일 지정) | |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 | ||
| + | | **시대** | | | ||
| + | | **소유** | 청풍김씨종중 | | ||
| + | | **관리** | | | ||
| + | | **소재지** |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양지리 산 1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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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청주 삼월비는 조선시대 노비였던 삼월의 공을 기리기 위해, 1796년(정조 20) 김윤金潤의 후손들이 세운 비석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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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창읍 양지리쪽에서 목령산을 오르는 산중턱에 청풍김씨인 김윤의 묘소가 있는데, 삼월비는 이 묘소의 향우측에 있다. 4각형의 받침돌 위에 비신을 얹은 모습이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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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비문에 의하면, 삼월은 청풍김씨 집안의 여종으로 1489년(성종 20)에 주인집의 장자인 김윤이 태어난 지 3일 만에 어머니가 죽자 이를 대신하여 젖을 먹이어 키웠다. 김윤이 18세가 되어 결혼을 했으나 그 또한 불행히도 유복자遺腹子를 남긴 채 죽게 되었다. 삼월은 정성으로 유복자를 잘 보살펴 키우니 그가 장성하여 벼슬이 우후虞侯에 이르는 등 가문이 크게 번창하였다. 이에 김윤의 후손들은 그 공이 모두 삼월에게 있다고 여기고 그녀의 공을 기리기 위해서 이 비석을세웠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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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삼월비는 삼월이 죽은 뒤 약 150년이 지난 1796년에 세웠으며 글은 정조 때 좌의정을 지낸 김종수金鍾秀가 짓고 글씨는 80세의 김치희金致熙가 썼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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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선 전기 노비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비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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