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처용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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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처용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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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종목** | 시도기념물 (1997년 10월 09일 지정) | | ||
| + | | **분류** | 자연유산 / 천연기념물 / 문화역사기념물 / 민속 | | ||
| + | | **시대** | | | ||
| + | | **소유** | 울산광역시 | | ||
| + | | **관리** | 울산광역시 남구 | | ||
| + | | **소재지** | 울산 남구 황성동 668-1번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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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처용암은 남구 황성동 세죽마을 해변에서 약 150m 떨어진 바위섬이다. 처용암의 유래 전설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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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라 헌강왕(憲康王 : 재위 875~886년)이 이곳에 놀이를 와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가려 앞을 볼 수 없었다. 일관이 동해 용(龍)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달래주어야 한다고 보고하였다. 왕이 즉시 이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명령하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곳을 개운포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 세운 절은 현재 울주군 청량면 율리에 터가 남아 있는 망해사(望海寺)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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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왕의 명령에 동해용이 크게 기뻐하여 바다에서 일곱 왕자를 거느리고 왕의 앞에 나타나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 가운데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로 와서 왕의 정사를 도왔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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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삼국유사』에서는 처용을 용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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