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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창원_봉림사지_진경대사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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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1613309.jpg?400|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 }} ||
 +| **종목** | 보물 (1963년 01월 21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통일신라시대 | 
 +| **소유** | 국유 |
 +| **관리** | [[대한민국: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
 +| **소재지** |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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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 심희(審希)의 탑비로, 원래 경남 창원의 봉림사터에 있던 것을 1919년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
 + 심희(855∼923)는 9세에 출가하여 명산을 다니면서 수행을 하다가 경남 창원에서 봉림사를 창건하니, 이때부터 선문9산 중 하나인 봉림산문의 기운이 크게 일어났다. 궁으로 들어가 경명왕에게 설법을 하기도 하였고, 그 후 다시 봉림사로 돌아와 제자들을 지도하다 68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왕은 시호를 ‘진경대사’라 하고, ‘보월능공’이라는 탑이름을 내리었다.
 +
 +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받침돌의 거북머리는 유난히 크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머리 위에는 뿔이 있던 작은 구멍이 있다. 등 위로는 비를 꽂아두기 위한 네모난 홈을 마련하였는데, 주위에 구름무늬가 가득하다. 비문이 새겨져 있는 비몸은 분실된 부분이 있어 옛 탁본을 참고로 복원해 놓았다. 머릿돌에는 구름속에 둘러싸인 두 마리의 용이 모퉁이에 각 한 마리씩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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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신라 경명왕 8년(924)에 세워진 비로, 왕이 직접 비문을 짓고 행기(幸期)가 글씨를 썼으며 성휴(性休)가 새겼다. 각 조각들이 얕아지고 형식화된 경향이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쇠퇴하던 기풍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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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