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창덕궁_낙선재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 양쪽 이전 판이전 판 | |||
| 대한민국:국가유산:창덕궁_낙선재 [2025/04/02 04:50]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 | 대한민국:국가유산:창덕궁_낙선재 [2025/04/02 04:50] (현재) – 만듦 sh | ||
|---|---|---|---|
| 줄 1: | 줄 1: | ||
| + | ====== 창덕궁 낙선재 ====== | ||
| + | | {{ http:// | ||
| + | | **종목** | 보물 (2012년 03월 02일 지정) | |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궁궐 | | ||
| + | | **시대** | 조선시대 | | ||
| + | | **소유** | 국유 | | ||
| + | | **관리** | 국가유산청 창덕궁관리소 | | ||
| +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0 (와룡동, 창덕궁) | | ||
| + | |||
| + | ===== 소개 ===== | ||
| + | 낙선재는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맨 좌측에 낙선재가 크게 자리 잡고 그 우측으로 석복헌과 수강재가 연이어져 있으며, 이들 뒤편에는 화초·석물·꽃담 굴뚝 등으로 가꾸어진 아름다운 화계와 그 위의 꽃담 너머로는 상량정·한정당·취운정이 위치해 있다. | ||
| + | |||
| + | 원래 왕의 연침공간 조성을 목적으로 낙선재가 지어지고 이듬해에 빈의 처소를 위하여 석복헌을 짓고 수강재를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궁궐 안에 사대부주택형식으로 지은 건물로는 낙선재와 연경당뿐이다. | ||
| + | |||
| + | 낙선재는 헌종 13년(1847)에 왕이 왕비와 대왕대비를 위해 마련하여 조선 왕실의 권위를 확립하고 자신의 개혁의지를 실천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했다. 1884년 갑신정변 직후 고종의 집무소로 사용하고 그 후 조선왕조 마지막 영친왕 이은이 1963년부터 1970년까지 살았으며, | ||
| + | |||
| + | 낙선재는 남행각에 나있는 정문인 장락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 건너에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로 자리 잡고 그 좌측에 서행각이 남행각과 직교로 연접해 있다. 맨 좌측에 앞으로 돌출한 1칸이 주형 초석 위에 놓여 누마루가 되면서 시선을 끈다. 누마루 뒤로는 온돌방 1칸을 두고 그 우측으로 대청2칸, 온돌방 2칸, 다락방 1칸을 배열하였으며, | ||
| + | |||
| + | 구조양식은 잘 다듬은 화강석 바른 층 쌓기 한 기단 위에 방형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물익공 겹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물익공은 당초문양으로 세련되게 초각하고 보머리와 보아지도 같은 수법으로 품위 있게 장식하여 궁궐의 면모를 갖추게 했다. 주간은 소로로 수장하고, | ||
| + | |||
| + | 낙선재는 궁궐 내의 침전건축과는 달리 단청을 하지 않고 사대부주택형식으로 건축되었으나, | ||
| + | |||
| + | {{tag>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