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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진주_벽오당_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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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진주_벽오당_현판 [2025/04/01 05:54] – 만듦 sh대한민국:국가유산:진주_벽오당_현판 [2025/04/02 04:51]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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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 벽오당 현판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64809.jpg?400|진주 벽오당 현판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02년 06월 07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목판각류 / 현판류 | 
 +| **시대** | 16세기∼17세기 추정 | 
 +| **소유** | 진*** |
 +| **관리** | 국*** |
 +| **소재지** | 경상남도  진주시 | 
 +
 +===== 소개 =====
 +진주 향사당 내에 있던 벽오당 건물의 현판으로, 벽오당은 조선 초 하륜(1347∼1416)에게 태종이 직접 내린 교서를 봉안하기 위해 마련한 건물이다.
 +
 + 이 현판은 가로 220㎝·세로 100㎝ 크기이며, 송판 아홉 장을 연결하여 그 위에 돋을새김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벽오당(碧梧堂)’이라 쓰여 있다. 이 현판을 달기 위하여 윗쪽으로 3개의 구멍과 중간 쯤에 2개의 구멍을 뚫어 두었다. 이로써 이 현판이 원래는 약간 숙이는 모양으로 달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현판의 글씨는 해서(楷書)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결구(結構)가 균형이 완벽할 정도로 빈틈이 없으며, 운필이 엄정하고 야무지면서도 전체적으로 넉넉한 여유가 느껴진다.
 +
 + 현판에 아무런 기록이 없으므로 이 현판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옻칠을 하여 잘 보관된 이 현판은, 그 서체와 함께 역사적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그 제작 시기가 적어도 1578년과 1642년 사이일 것으로 추정된다.
 +
 + 이 현판은 진주 향사당 내의 ‘벽오당’이라는 건물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것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현재 뚫려 있는 현판의 구멍을 통해서 현판이 어떻게 달려 있었는지도 알 수 있게 해주는 등 우리의 현판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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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