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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진주강씨_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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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강씨 고문서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64799.jpg?400|진주강씨 고문서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02년 02월 14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문서류 / 문서류 / 문서류 | 
 +| **시대** |  | 
 +| **소유** | 강*** |
 +| **관리** | 국*** |
 +| **소재지** | 경남 진주시 강남로131번길 4-3 (칠암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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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강익(姜瀷)에서 강관수(姜寬秀)에 이르기까지 7대 185년간(1723∼1908)에 걸치는 호구단자·준호구·신호적 등 30매, 의인 남원양씨 정려각 중수 상량고유문 1매, 1646∼1649 사이의 강승(姜昇)의 교지 3매, 강수제(姜壽齊)의 별가교첩(別加敎牒) 2매, 간찰 1매 등 모두 37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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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익에서 강관수에 이르기까지 7대 185년간(1723∼1908)에 걸치는 호구단자(20)·준호구(8) 및 신호적(2) 등의 자료들에는 다른 문중의 자료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강시희(姜始熙)의 아들인 강진응(姜震應)이 강익의 양자로 들어가 대를 이어가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양 가문의 문서들이 혼재하고 있다는 것이 그 하나이다. 또 대가 바뀌면서 거주지가 자주 바뀌고 있는 모습도 특이하다. 자료의 분량으로 보거나 자료 분포의 시간대로 보아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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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인 남원양씨 정려각 중수 상량고유문은 1893년 강영문(姜永文) 등이 8대 조모 의인 남원양씨(강수제의 처)의 효열(孝烈)로 내려진 정려각을 새로 중수하면서 상량문과 함께 신에게 고(告)한 문기(文記)이다. 이 문건은 시기가 좀 뒤늦은 것이기는 하지만, 흔히 발견되는 교지나 호구단자 등과는 달리 희귀한 자료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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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46년부터 1649년 사이의 강승의 교지 3매와 강수제의 별가교첩 2매는 비교적 오래된 것이므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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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찰 1매는 그 출처가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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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집안에서 오래 보관되어 오는 고문서로서 문화유산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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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