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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진도_남도진성 [2025/04/02 04:53]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 | 대한민국:국가유산:진도_남도진성 [2025/04/02 04:53] (현재) – 만듦 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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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진도 남도진성 ====== |
|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1627067.jpg?400|진도 남도진성 }} || |
| | | **종목** | 사적 (1964년 06월 10일 지정)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
| | | **시대** | 조선시대 | |
| | | **소유** | 진도군 등 | |
| | | **관리** | 진도군 | |
| | | **소재지** | 전남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149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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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개 ===== |
| | 고려 원종(재위 1259∼1274), 삼별초가 진도에서 몽골과 항쟁을 벌일 때 해안지방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삼별초가 제주도로 옮겨갈 때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백제 때 진도에는 3개의 마을이 있었고 그 중 한 마을의 중심지가 이곳으로 여겨지는데,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오는 것을 보면, 삼국시대에 이미 성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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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세기부터는 왜구가 나타나서 노략질을 계속해 오자, 고려 충정왕 2년(1350)에 진도의 관청과 백성들이 내륙지방으로 피해서 살다가 세종대왕 초에 돌아오기도 했다. 결국 세종 20년(1438) 해안지방에 주로 설치되던 군사조직인 만호부가 이 지역에 생기게 되고 왜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성을 쌓았는데, 지금 남아있는 성은 그 이후에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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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서·남문이 있던 자리가 잘 남아 있으며, 둘레가 400여m 정도이지만, 해안지방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위치임을 보여주고 있는 유적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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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r/><b>※(남도석성 → 진도 남도진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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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g>국가유산 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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