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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조영복선생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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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조영복선생영정 [2025/04/01 06:01] – 만듦 sh대한민국:국가유산:조영복선생영정 [2025/04/02 04:49]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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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영복선생영정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37597.jpg?400|조영복선생영정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1985년 06월 28일 지정) |
 +| **분류** |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 
 +| **시대** |  | 
 +| **소유** |  |
 +| **관리** | 경*** |
 +| **소재지** | 경기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산19번지 (경기도 박물관) | 
 +
 +===== 소개 =====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인 조영복(1672∼1728) 선생의 초상화 2점이다. 조영복은 동래부사, 충청도감사 등을 거쳐 당시 서울의 행정과 법집행을 맡아본 한성부에서 종2품의 벼슬을 지냈다.
 +
 + 2점 중 하나는 사방모를 쓰고 도포차림를 한 반신상으로, 가로 120㎝, 세로 76.5㎝의 크기이며, 나머지 하나는 사모에 관복을 입은 전신좌상으로, 가로 80㎝, 세로 154㎝의 크기이다.
 +
 + 반신상은 화면 오른쪽 윗부분에 이 그림의 내력에 대한 아우 조영석의 글이 적혀 있는데, 이에 따르면 선생이 영춘 지역에 유배되었을 때에 아우 조영석이 본을 떠 놓았다가, 영조 1년(1725) 선생이 유배를 마치고 조정에 돌아온 후 완성한 것이다. 이 때 화원 진재해에게 따로 관복 차림을 그리게 하였는데, 이것이 전신상으로, 그린 사람이 각기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 복장에서만 차이가 날 뿐 거의 동일한 기법을 보인다. 
 +
 + 즉, 두 점 모두 얼굴과 몸을 약간 왼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반신상은 두 손이 밖으로 나와 있는데 이는 조선 초상화 중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관복 차림의 초상화는 연붉은 관복 위에 관대가 있으나 흉배가 없고 얼굴의 표현이 사실적이고 섬세하다.
 +
 + 2점의 그림 모두 18세기 조선 전기의 초상화 유형과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아우 조영석이 형의 모습을 화폭에 생생하게 담아낸 일이 당시의 대신들 사이에서 이야기되었음이 『승정원일기』에 전하고 있다.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