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정읍_보화리_석조이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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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읍 보화리 석조이불입상 ====== | ||
| + | | {{ http:// | ||
| + | | **종목** | 보물 (1987년 03월 09일 지정) | | ||
| + | |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석조 / 불상 | | ||
| + | | **시대** | 백제시대 초기 7세기 | | ||
| + | | **소유** | 국유 | | ||
| + | | **관리** | 정읍시 | | ||
| + | | **소재지** | 전북 정읍시 소성면 보화리 1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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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야산 중턱에 나란히 서 있는 2구의 석불입상이다. 백제시대의 불상으로 백제 최남단에 조성된 화강암 석불이라는 점과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偏袒右肩)의 착의법(着衣法)을 보여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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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두 불상은 같은 조각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지만, 오른쪽 불상이 왼쪽 불상보다 약간 커서 이불병존상(二佛竝存像)을 염두에 두고 조성된 것은 아닌 듯 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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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른쪽의 큰 불상은 뒤편의 광배(光背)가 깨지고 대좌(臺座)의 아랫부분을 잃어버린 것 외에는 대체로 완전한 모습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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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민머리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인 육계가 솟아 있는데, 이는 백제시대의 불상인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과 흡사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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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불상의 조각양식은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이나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과 같은 계열의 백제시대의 불상과 유사한 점을 보여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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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불상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입고 있는 불의(佛衣)이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채 대의(大衣)를 입고 있으며 승각기(僧脚岐)와 아래치마(下裙)도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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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른팔이 없어진 작은 불상도 큰 불상과 같은 특징들을 나타내고 있다. 불상의 조각양식이나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입고 있는 불의(佛衣) 등에서 백제 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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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삼국시대 말기부터 말기부터 등장하는 편단우견의 착의법은 신라 지역의 삼곡(三曲)자세 금동제여래입상을 중심으로 널리 유행했던 형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석불상의 발견으로 백제에서도 일찍부터 그 착의법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불상의 제작시기는 백제 말기인 7세기 중엽으로 추정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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