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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정공청_유품 [2025/04/02 04:50]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 | 대한민국:국가유산:정공청_유품 [2025/04/02 04:50] (현재) – 만듦 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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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공청 유품 ====== |
|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imp_folklore_material/1634861.jpg?400|정공청 유품 }} || |
| | | **종목** | 국가민속문화유산 (1979년 01월 26일 지정) | |
| |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복식공예 / 의복 | |
| | | **시대** | 조선시대 | |
| | | **소유** | 정*** | |
| | | **관리** | [[대한민국:박물관:울산박물관|울산박물관]] | |
| | | **소재지** | 울산광역시 남구 두왕로 277-0 (신정동, 울산박물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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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개 ===== |
| | 정공청 장군이 임진왜란(1592)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하면서 착용했던 투구와 갑옷, 장갑, 혁대, 화살 등의 유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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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공청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들과 함께 전쟁에 참가하여 울산, 서생포, 기장 등지에서 백여배에 달하는 왜군들과 싸워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공을 세웠으며 이 때문에 그는 1등, 그의 아들은 2등 공신에 책봉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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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 그의 유물들은 후손인 정철환이 국립경주박물관에 위탁하여 보관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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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원(圓)모양의 철로 만든 투구는 부식이 심한 상태이지만 원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정면에는 앞쪽으로 3㎝, 길이로 17㎝ 정도의 해가리개를 양끝과 가운데 못을 박아 달았고, 목가리개가 있던 흔적이 남아있다. 이것은『세종실록』중 ‘오례(五禮) ’중에 나오는 병기(兵器)가운데 원두(圓兜)와 비슷한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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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옷은 남자들의 겉옷인 포(袍)의 형태를 하고 있다. 겉은 화려한 초록색이고 안은 명주인데 천 사이에 2㎝ 간격으로 누빈 2겹의 무명천이 들어 있다. 앞쪽에는 옷을 여밀 수 있도록 매듭으로 만든 4개의 단추가 있으며 어깨에는 중앙에 가운데가 꺾일 수 있도록 경첩장식을 달아 팔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였다. 옷의 위와 아래에는 놋쇠로 만든 못을 박았고 목둘레와 소매끝, 아래단에는 가죽으로 단을 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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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장군의 유품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오늘날의 것과 모습이 거의 같은 장갑이다.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것으로 활을 쏠때 낀 것으로 보이며 엄지손가락에는 뿔로 만든 깍지가 붙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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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밖에 가죽으로 만든 길이 80㎝, 125㎝의 혁대와 일본도와 비슷한 너비 3.5㎝, 길이 85㎝의 철제로 만든 도검(刀劍), 6개의 화살 등이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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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유물들은 임진왜란 당시의 것으로 복식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서 높은 평가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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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g>국가유산 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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