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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전_박신용장군_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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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박신용장군 의대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imp_folklore_material/1634277.jpg?400|전 박신용장군 의대 }} ||
 +| **종목** | 국가민속문화유산 (1980년 04월 01일 지정) |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복식공예 / 의복 | 
 +| **시대** | 18세기~19세기 | 
 +| **소유** | 박*** |
 +| **관리** | [[대한민국:박물관:국립부여박물관|국립부여박물관]] |
 +| **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국립부여박물관 (동남리) | 
 +
 +===== 소개 =====
 +박신용 장군(1575~1627)은 광해군 10년(1618)에 무과에 급제하고 선전관을 거쳐 권지중군이 되었으며, 정묘호란때 후금의 군사와 싸우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고종22년(1885)에 유의각(遺衣閣)을 세우고 이 유물들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1874년 민병승(閔丙承)이 찬한 신도비명(神道碑銘)이나 1896년 이설(李崔)의 유의각비문(遺衣閣碑文)에 의하면, 당시에 시신을 찾지 못하여 집에 있던 박신용 장군의 유의와 신발은 허묘(虛墓)를 만들어 매장하였으며, 그 후 숙종 11년(1685)에 병조참지(兵曹參知)를 증직(贈職)받고 영조 27년(1751)에 정려(旌閭)되었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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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복들의 형태로 미루어 박신용 장군 사후 숙종에서 영조대 사이에 증직, 정려되는 과정에서 후손에 의하여 몇 차례에 걸쳐 봉안(奉安)된 것으로 보인다. 단령과 철릭, 괘자 등의 형태가 박신용 장군의 생존 시기의 특성을 보이지 않고, 그보다 100여년에서 200여년 이후인 18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
 +유물로는 관복1점, 청철릭, 홍철릭 각1점과 전복으로 입었던 답호와 허리에 매던 대 3점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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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복은 깃모양이 둥근 단령이며 소매가 넓은 홑겹의 모시로 만든 옷으로 길이는 134㎝이다. 아쉽게 가슴과 등뒤에 수놓인 흉배가 없는 것이 흠이다. 청철릭은 푸른색의 철릭으로 철릭이란 조선시대 문무관리들이 외국사신으로 파견될 때나 국난을 당했을 때 임금을 호종할 때 착용하던 옷이다. 이것은 푸른색 명주로 만들었고 품이 32㎝, 치마길이는 94㎝이다. 홍철릭은 청철릭과 비슷한 크기와 모습을 하고 있으나 붉은색 명주로 만들어 졌다. 전복은 평상복위에 걸쳤던 것으로 소매가 없고 덧 대는 천인 무와 섶이 없는 옷이다. 겉은 보라색이고 속과 동정은 흰색으로 되어 있으며 아래가 퍼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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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