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전라우수영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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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전라우수영성지 [2025/04/02 04:54]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전라우수영성지 [2025/04/02 04:54]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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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라우수영성지 ======
 +| {{ ?400|전라우수영성지 }} ||
 +| **종목** | 시도기념물 (1992년 03월 09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지 | 
 +| **시대** |  | 
 +| **소유** | 기*** |
 +| **관리** | 해*** |
 +| **소재지** | 전남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 산1661번지 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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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고려 말기 우왕 3년(1377) 전라남도 무안 당곶포에 수군처치사영(水軍處置使營)이 설치된 뒤, 조선 세종 22년(1440)에 현 위치인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황원곶으로 이를 옮겼다. 세조 11년 (1465)에 수군절도사영(水軍節度使營)으로 승격되었고, 성종 10년(1479) 전라남도 순천 내례포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된 후 이곳은 전라우도 수군절도사영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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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의 영역은 남북 길이 10리, 동서 너비 5리의 크기이며, 석축의 둘레는 3,843척, 높이 11척, 연못 3개소가 있었다. 『전라우수영지』에 의하면 영내에는 민가 620호, 수군 병력 1,085명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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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왜란 때에는 전라우도 연해지역 14관을 관할하였을 만큼 군사적인 규모와 역할이 매우 컸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수사 김억추는 통제사 이순신과 더불어 명량대첩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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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안선을 따라 가며 쌓은 전라우수영은 돌과 흙을 섞어 쌓은 혼합형으로, 사각형과 원형의 중간 형태를 띄고 있다. 성벽을 쌓은 아래쪽의 돌은 150㎝ 이상이 되는 큰 것들이나 올라가면서 30∼50㎝ 정도로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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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