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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장수_침령산성 [2025/04/02 04:54]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 | 대한민국:국가유산:장수_침령산성 [2025/04/02 04:55] (현재) – 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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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장수 침령산성 ====== |
|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2023091910024900.png?400|장수 침령산성 }} || |
| | | **종목** | 사적 (2023년 08월 02일 지정) |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
| | | **시대** | 삼국시대-고려 | |
| | | **소유** | 장수군 | |
| | | **관리** | 장수군 | |
| | | **소재지** | 전라북도 장수군 계남면 침곡리 109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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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개 ===== |
| | 「장수 침령산성」은 둘레 497m의 산성으로 7세기 초 백제가 축조한 후 고려 초기까지 사용했으며, 낙동강 유역의 신라세력과 금강 유역의 백제 세력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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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령’은 침령산성이 위치한 고개의 지명으로 「만기요람」, 「대동지지」, 「해동지도」, 「대동여지도」등의 문헌자료에 ‘침치’, ‘침치고성’, ‘침령’ 으로 기록된 바 있으며, 현재는 침령산성으로 불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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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령산성은 2005년 정밀지표조사를 시작으로 2014년부터 2020년까지 5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집수시설, 건물지, 치, 문지 등의 유구와 유물이 발견된 바 있다. 특히, 산성 내부에서 발견된 3기의 집수시설은 축조기법이 정교하고 규모도 커 고대 집수시설 축조기술을 파악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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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고남저의 지형에 축조된 침령산성은 남벽과 북벽이 길고, 동벽은 짧고 서벽이 긴 부정형으로 현재는 남벽과 북벽, 동벽 일부구간이 남아있으며, 그 높이는 약 5~10m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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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수시설과 건물지에서는 다량의 유물도 출토되었는데, 특히 집수시설에서는 전북특별자치도 동부지역의 지배체제 변화 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직구단경호’(백제), ‘소호’(신라, 작은 단지), ‘청자 완편’(고려, 사발 조각) 등이 출토된 것을 비롯해 기와, 금속 열쇠, 목간 등 다양한 종류와 시기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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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령산성은 삼국시대부터 고려 초까지 한반도 고대국가 간의 치열한 각축전이 일어난 역사적 장소이며, 출토유물 등을 통해 정치체의 지배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뛰어난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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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g>국가유산 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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