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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장성_필암서원_하서유묵_목판_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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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장성_필암서원_하서유묵_목판_일괄 [2025/04/02 04:53]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장성_필암서원_하서유묵_목판_일괄 [2025/04/02 04:53]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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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성 필암서원 하서유묵 목판 일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2018112114453100.jpg?400|장성 필암서원 하서유묵 목판 일괄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1999년 07월 05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 목판본 / 사간본 | 
 +| **시대** | 1610년,1568년 | 
 +| **소유** | 필암서원 |
 +| **관리** | 필암서원 |
 +| **소재지** |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377 필암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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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조선 인종 때의 학자인 하서 김인후(1510∼1560)와 관련된 문서들을 새긴 목판으로, 모두 56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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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인후는 1540년 문과에 급제하여 문원부정자를 시작으로 홍문관의 박사와 부수찬, 옥과현감 등의 벼슬을 지냈다. 시문에 뛰어나 10여 권의 문집을 남겼으나 도학(道學)에 관해 쓴 책은 많지 않다. 천문, 지리, 의약, 산수에도 정통하였으며, 제자로는 정철, 조희문 등이 있다. 그가 죽은 후 장성의 필암서원, 옥과의 영귀서원 등에 모셔졌고, 시호는 ‘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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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해군 2년(1610)에 새긴 『초서천자문』 18판과 『해자무이구곡』 18판, 선조 1년(1568년) 새긴 『백련초해』 13판과 『유묵』 4판, 그리고 인종이 김인후에게 하사한 묵죽도판 3판으로 선조 1년(1568년)과 영조 46년(1770)에 새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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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진경체에 바탕한 김인후의 초서체 글씨는 당시 성리학자 특히 호남 학자들 사이에 전형적인 모범 글씨가 되었다.『백련초해』는 100가지 싯구를 한글로 해석한 것인데,『백련초해』한글판 가운데 연대가 가장 앞섰고 인종의 판체인 묵죽도판은 판각의 변천을 알 수 있는 것으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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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