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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장성_필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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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장성_필암서원 [2025/04/02 04:54]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장성_필암서원 [2025/04/02 04:54]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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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성 필암서원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1627082.jpg?400|장성 필암서원 }} ||
 +| **종목** | 사적 (1975년 04월 23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원 | 
 +| **시대** | 조선 중기 | 
 +| **소유** | 필암서원 |
 +| **관리** | 장성군 |
 +| **소재지** |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378-379번지 | 
 +
 +===== 소개 =====
 +선비들이 모여서 학문을 닦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선조 23년(1590)에 하서 김인후(1510∼1560)를 추모하기 위해서 그의 고향인 기산리에 세워졌다.
 +
 +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인조 24년(1624)에 다시 지었다. 현종 3년(1662)에 임금께서 ‘필암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직접 내려보내 주셨으며, 167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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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부하는 곳을 앞쪽에, 제사지내는 곳을 뒤쪽에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서 휴식처가 되는 확연루를 시작으로 수업을 받는 청절당, 그 뒤에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북쪽으로는 문과 담으로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사당을 두고 제사를 지냈다.
 +
 + 청절당의 처마밑에는 윤봉구가 쓴 ‘필암서원’현판이 걸려있고, 대청마루에는 동춘 송준길이 쓴 현판이 달려있다. 또한 확연루의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사당의 동쪽에는 경장각이 있는데, 보물로 지정된 서책이나 문서 등이 보관되어 있다. 이들 자료는 주로 18세기∼20세기초부터 전래된 것으로서, 당시 지방교육과 제도 및 사회·경제상, 그리고 학자들의 생활상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 명칭변경: 필암서원 → 장성 필암서원(2011.07.28)
 +
 +<세계유산등재: 한국의 서원(2019. 7. 6.)>
 +
 +ㅇ 유산지역: 소수서원(영주), 남계서원(함양), 옥산서원(경주), 도산서원(안동), 필암서원(장성), 도동서원(달성), 병산서원(안동), 무성서원(정읍), 돈암서원(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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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 성리학과 관련된 한국의 문화적 전통의 탁월한 증거로 그 교육과 사회적 관습은 많은 부분 오늘날까지 지속됨. 서원은 중국에서 들어온 성리학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형되고 있고 그 결과 그 기능과 배치, 건축적인 면에서 변화를 겪고 토착화되는 역사적 과정에 대한 특출한 증거임. ※세계유산적 가치(탁월한 보편적기준/OUV) 보유(기준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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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