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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장성_김인후_난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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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성 김인후 난산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2022101214072400.jpg?400|장성 김인후 난산비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03년 10월 04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조선 헌종 9년(1843) | 
 +| **소유** | 울산김씨문중 |
 +| **관리** | 울산김씨문중 |
 +| **소재지** | 전남 장성군 황룡면 맥호리 105번지 | 
 +
 +===== 소개 =====
 +김인후 난산비는 김인후(1510∼1560)가 매년 인종의 기일(忌日)인 7월 1일 맥동마을 난산(卵山)에 올라 북망통곡(北望慟哭)한 것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
 + 호패형의 일반형 석비로 전면 상단에 전서로 횡서로 ‘난산지비(卵山之碑)’, 첫줄에 종서로 ‘난산비(卵山碑)’라 제하고, 이어 찬자(윤행임)와 서자(이익회)를 쓰고 비문을 적고 있다. 비문은 비의 제목을 포함하여 모두 31행(전 10행, 좌 5행, 후 10행, 우 6행), 1행 26자이다. 비문은 석재 윤행임(1762∼1801)이 짓고, 이익회(1767∼1843)가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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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 부분에 추기가 있는데 ‘영력 사계묘 윤정현 근지(永曆 四癸卯 尹定鉉 謹識)’라는 기록이 있어 조선 헌종 9년(1843)에 윤정현(1793∼1874)이 추기하고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윤정현은 난산비의 원비문을 지은 윤행임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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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성 김인후 난산비는 김인후가 인종 승하시 망곡한 것[망곡단]을 기념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김인후의 행적과 정신을 알 수 있으며 국상(國喪)에 따른 당시 제도사를 알 수 있는 등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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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