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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임진왜란_웅치_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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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왜란 웅치 전적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2023010314505400.JPG?400|임진왜란 웅치 전적 }} ||
 +| **종목** | 사적 (2022년 12월 30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전적지 / 임란전적지 | 
 +| **시대** | 조선시대 | 
 +| **소유** | 전*** |
 +| **관리** | 전라북도 |
 +| **소재지**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산 51 ,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산289 일원 | 
 +
 +===== 소개 =====
 +「임진왜란 웅치 전적」은 임진왜란 초기(1592년 7월) 전라도를 침략한 왜군에 맞서 관군 및 의병이 민관 합동으로 호남을 지켜낸 ‘웅치 전투’가 발생한 곳으로 호남 방어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으며, 초기의 열세를 극복하고 조선군이 결국 승전하게 되는 국난 극복의 전적지로 평가된다. 
 +
 +‘웅치’는 완주군*과 진안군** 사이 고갯길의 지명으로 웅치 일대의 옛길은 전주와 전라도 동부지방인 진안 등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
 +* 전북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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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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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치 전투는 임진왜란 초기 진안을 거쳐 전주를 공격해오던 왜군을 진안과 전주의 경계였던 웅치 일대에서 막아서며 전개되었다. 왜군은 결국 웅치를 넘어 전주 부근까지 진출하였으나 전투 과정에서 많은 전력을 상실하여 전면적인 공격을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전주를 공격하여 전라도 일대를 장악하고자 했던 왜군의 전략을 무력화시켰다는 점에서 승패를 떠나 국난 극복의 전적지로서 의미를 가진다.
 +
 + 웅치 전투를 통한 호남 수호 이후, 관군과 의병이 경기도와 경상도로 진출하여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전쟁에 필요한 각종 물자를 호남 지역으로부터 조달하는 등 임진왜란 극복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
 + 문화유산 지정구역은 ‘웅치 전투’의 장소성을 입증할 수 있는 문헌 기록*** 및 지명에 대한 자료 등을 통해 주요 전투가 벌어진 지역(웅치길-웅치고개-건지봉)으로 설정하였다. 
 +
 +*** 난중잡록, 징비록, 진안지, 사천김씨세보, 최학부 묘비문 등
 +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