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임병찬_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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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국가유산:임병찬_초상 [2025/04/02 04:51]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 | 대한민국:국가유산:임병찬_초상 [2025/04/02 04:51] (현재) – 만듦 s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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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임병찬 초상 ====== | ||
| + | | {{ http:// | ||
|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21년 06월 10일 지정) | | ||
| + | | **분류** |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 | ||
| + | | **시대** | 1911년 | | ||
| + | | **소유** | 임*** | | ||
| + | | **관리** | 임*** | | ||
| +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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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遯軒 林炳瓚은 구한말에 활약한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乙巳條約이 체결된 이후 1906년 정월 勉庵 崔益鉉(1833-1906)이 호남으로 내려 왔고, 거사를 준비 중이던 이병찬을 만나 師弟의 義를 맺었다. 1906년 윤4월 74세의 최익현이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킨 직후, 임병찬은 6월 4일 전북 정읍 武城書院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순창에서 체포되었다. 監禁 2년형을 선고받고 일본의 대마도로 유배되었다가 1907년 초에 귀국하였다. 大韓獨立義軍府를 결성하여 무력항쟁을 추진하려고 한 광무황제의 密勅을 받고 1912년 이후 의병장으로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1914년 체포되어 거문도에 유배되었다가 1916년 음력5월 순국하였다. 유고집으로 『遯軒遺稿』가 있고, 1962년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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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작품의 화면 왼쪽에는 “永歷五辛亥六月六日石芝蔡龍臣寫”라고 해서체로 기록되어 있고, 이어서 ‘石芝’라는 소형 주문방인과 대형 주문인이 찍혀 있다. 이로서 이 작품이 구한말의 대표적인 초상화가인 蔡龍臣(1850~1941)이 그린 것이고, 신해년, 1911년 채용신이 62세 되던 해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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