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가유산:일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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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일성록 ====== | ||
| + | | {{ http:// | ||
| + | | **종목** | 국보 (1973년 12월 31일 지정) | | ||
| + | |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 필사본 / 등록류 | | ||
| + | | **시대** | 조선시대 후기(1760∼1910) | | ||
| + | | **소유** | 국유 | | ||
| + | | **관리** | 서울대학교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 ||
| + | | **소재지** | 서울 관악구 관악로 1,103호 동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신림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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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소개 ===== | ||
| + | 1760년(영조 36) 1월부터 1910년(융희 4) 8월까지 조선후기 151년간의 국정에 관한 제반 사항들이 기록되어 있는 일기체의 연대기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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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일성록』의 모태가 된 것은 정조(正祖)는 세손(世孫) 시절부터 직접 자신의 언행과 학문을 기록한 일기인 『존현각일기』였다. 정조는 『논어(論語)』에서 증자(曾子)가 말한 “나는 날마다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에 대해 반성한다”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일찍부터 자신을 반성하는 자료로 삼기 위해 일기를 작성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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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776년 즉위 후에도 직접 일기를 작성하던 정조는 직접 처결할 국정 업무가 점차 늘어나 일기 작성이 어려워지자 1783년(정조 7)부터 규장각 관원들이 시정(施政)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일기를 작성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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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일성록』이 현재와 같은 체재를 갖춘 것은 1785년(정조 9)경이다. 정조는 규장각에 명하여 자신이 탄생한 후부터 『존현각일기』에 이르기까지 기간의 일기 및 자신이 즉위한 이후에 기록된 『승정원일기』등을 기본 자료로 하여 일목요연한 체재를 갖춘 일기를 편찬하도록 명하였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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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일성록』은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비변사등록』과 함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관찬 연대기라는 점, 다른 연대기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 상황 등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2011년 5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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