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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이시방_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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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시방 초상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1614870.jpg?400|이시방 초상 }} ||
 +| **종목** | 보물 (2006년 12월 29일 지정) |
 +| **분류** |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 
 +| **시대** | 1623년경 | 
 +| **소유** | 이*** |
 +| **관리** | [[대한민국:박물관:대전시립박물관|대전시립박물관]] |
 +| **소재지** | 대전광역시 유성구 도안대로 398 (상대동, 대전시립박물관) | 
 +
 +===== 소개 =====
 +李時昉(1594-1660)은 仁祖反正의 주역들인 延平府院君 李貴(1557-1633)의 次子이자 延陽府院君 李時白(1581-1660)의 동생이다. 이시방은 아버지와 형을 따라 1623년의 30세 때 仁祖反正에 참여하여 靖社功臣 2等으로 延城君에 봉해지고, 이후 여러 차례 判書를 지낸 뒤 顯宗 즉위년(1659) 가을에 判義禁府事를 지냈다. 
 +
 + 현재 대전의 후손가에 전하는 이시방의 초상은 모두 6점인데, 본래는 이시방의 후손들이 世居하던 洪城의 祠堂에서 주로 봉안해오던 것들이라고 한다. 먼저 1623년의 仁祖反正에 참여하여 靖社功臣에 녹훈되던 30세 때의 젊은 모습을 그린 것이 3점인데, 이 중에서 官服本 全身像 1점은 17세기 초반의 전형적인 功臣圖像의 형식과 화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이시방의 靖社功臣像 원작으로 생각된다. 
 +
 + 그리고 이와 圖像이 같은 半身小像 1점은 훗날 延平府院君 李貴의 祠宇가 있는 公州 木洞面의 盛峰書社(盛峰書院)에 李時昉 像을 모시기 위해서 이 功臣像의 일부를 다소 거칠고 조악하게 摹寫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1점의 油紙 草本은 이 胸像을 그릴 때 全身像에서 떠냈던 草本이 아닌가 생각된다. 
 +
 + 또 다른 한 종류의 초상 3점은 얼굴 모습이 거의 동일한 老年像인데, 2점은 종이에 그린 胸像 草本이고, 나머지 1본은 이 草本을 토대로 하여 비단에 그린 正本의 半身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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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중 17세기 공신 도상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관복본 전신상>에 대해서만 보물로 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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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 규격(세로x가로) : 169.0x93cm(화면), 224.0x106.3cm(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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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