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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이광사_필적_원교법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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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이광사_필적_원교법첩 [2025/04/02 04:50]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이광사_필적_원교법첩 [2025/04/02 04:50]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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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사 필적 원교법첩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1614989.jpg?400|이광사 필적 원교법첩 }} ||
 +| **종목** | 보물 (2010년 10월 25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간류 / 서예 / 서예 | 
 +| **시대** | 1755년(영조 31, 이광사 56세) 2월 이전 | 
 +| **소유** | 국유 |
 +| **관리** | [[대한민국: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
 +===== 소개 =====
 +『이광사 필적 원교법첩(李匡師 筆蹟 員嶠法帖)』은 18세기 대중적 명필이던 원교 이광사(1705~1777)가 쓴 것으로 글씨를 받은 사람이나 제작연대는 적히지 않았지만, 서첩에 찍힌 원교은자(員嶠隱者), 이광사(李匡師), 이광사필서(李匡師筆書), 이광사인(李匡師印), 이광사장(李匡師章), 도보(道甫), 원교(員嶠), 이도보씨(李道甫氏), 조선국이광사자도보(朝鮮國李匡師字道甫) 등의 인영(印影)을 통해 적거 이전 중년 필적으로 여겨진다.
 +
 +이 서첩은 모두 40면으로 앞쪽의 25면은 밝은 옥색 비단에 먹으로 썼고, 중간의 9면은 매우 옅은 담옥색(淡玉色) 비단에 먹으로 썼으며, 뒤쪽의 6면은 검은 비단에 금니(金泥)로 썼다. 옥색ㆍ담옥색ㆍ검은색 비단에 먹과 금니를 사용하여 작고 큰 글자를 전예해행초 오체로 정성스럽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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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서(篆書)를 쓴 부분에는 글자마다 오른쪽 위에 붉은 먹으로 석문(釋文)을 달아 보기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표지에 있던 원래의 제첨(題簽)이 떨어진 듯 뒤에 “원교법첩(員喬法帖)[전해초(篆楷艸)]”라고 써놓았는데 ‘원교(員喬)’는 오류이므로 ‘원교법첩(員嶠法帖)’이라 고쳐 표기하였다.이 서첩은 현존하는 이광사의 수많은 서첩 가운데 가장 전형적인 작첩(作帖) 방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광사의 서론적(書論的) 입장을 잘 대변해주고 있으며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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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