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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율리영축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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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율리영축사지 [2025/04/02 04:49]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율리영축사지 [2025/04/02 04:49]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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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율리영축사지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1645895.jpg?400|율리영축사지 }} ||
 +| **종목** | 시도기념물 (1998년 10월 19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사찰 | 
 +| **시대** |  | 
 +| **소유** | 공유, 사유 |
 +| **관리** | 울산광역시 울주군 |
 +|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청량면 율리 822번지 외 12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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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영축사지(靈鷲寺址)는 영축산, 문수산, 남암산 등의 산등성이와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영축산 자락의 말단부 평지에 위치한다. 영축사지 주변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인 망해사지와 청송사지가 1㎞내외의 거리에 있어, 이 일대가 통일신라시대 울산 불교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
 +영축사의 창건 유래는 『삼국유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683년(신문왕 3), 온천에서 목욕하고 돌아오던 재상 충원공(忠元公)은 꿩이 매에게 쫓겨 굴정현(屈井縣) 현청(縣廳) 북쪽 우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꿩은 날개를 벌려 새끼 두 마리를 감싸고 있고, 또 매는 이를 잡지 않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절을 세울 만한 곳이라 여겼다. 이를 왕께 아뢰어 현청을 옮긴 뒤 그 곳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2012년 울산박물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기 전,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삼층석탑 부재가 동서로 나누어져 있었고, 남쪽에는 귀부(龜趺)가 확인되었으며, 주변에서 ‘영축’명 기와편이 채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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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1차) 결과, 통일신라시대 금당지 1동, 동․서탑, 중문지 1기, 석등의 하대석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금당지를 중심으로 쌍탑이 위치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가람배치임을 알 수 있었다.
 +
 +금당지는 정면 5칸, 측면 5칸의 정방형 구조로, 이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확인되지 않을 만큼 특이한 형태이다. 동․서탑은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를 갖춘 전형적인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이다. 이 외 석등 하대석과 정면 3칸, 측면 1칸의 중문지가 확인되어, 금당지-탑-석등-중문지라는 기본 가람구조였음을 알 수 있다. 유물은 비석편, 금동불상 등이 출토되었다. 영축사지는 울산지역 불교문화 연구에 상당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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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