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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윤증_초상_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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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증 초상 일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1618064.jpg?400|윤증 초상 일괄 }} ||
 +| **종목** | 보물 (2006년 12월 29일 지정) |
 +| **분류** |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 
 +| **시대** | 초상18세기, 전적19세기 | 
 +| **소유** | 윤*** |
 +| **관리** | 한*** |
 +| **소재지** | 충청남도  논산시 | 
 +
 +===== 소개 =====
 +‘崇禎紀元後再甲子四月摹’ 라는 묵서가 있는 측면전신좌상은 1744년 작품으로, 『영당기적』에 ‘崇禎紀元後, 再甲子四月, 影子移摹四本, 正面一仄面三. 畵師張敬周’라고 밝혀져 있어 장경주의 작품으로 확인된다. ‘崇禎紀元後三戊申二月摹’라는 묵서를 지닌 1788년작 <윤증 초상> 2점은 『영당기적』의 내용을 통해 이명기가 모사했음을 알 수 있다. '영당기적'에 따르면 정면 1본과 측면 1본은 신법을 가미하여 그리고, 구본의 화법을 후대에 전하지 않을 수 없어 구법을 따라 측면 1본을 그렸다(故倣甲子正面點化之例, 略加新法, 摹出正仄各一本, 而舊本畵法, 亦不可不傳於後. 故又出仄面一本, 純用舊摸法)고 한다. 이명기가 제작한 현전하는 초상화 2점은 장경주 필 윤증상과 그 모습이 흡사한 구법에 따라 그린 측면상과 이명기의 개성적 화풍으로 그린 입체표현이 선명한 신법의 측면상이다. 정면과 측면의 흉상 2점은 화면에 묵서가 남아있지 않아 제작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정면상과 측면상은 같은 비단에 같은 화가의 솜씨로 추정된다. 측면상을 전신상과 비교해 보면 크기나 기법이 장경주가 그린 초상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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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상화와 함께 전하는『영당기적』은 윤증 초상의 제작과 관련된 기록을 담은 필사본으로, 1711년 卞良이 윤증의 초상을 처음으로 그렸던 사례부터 1744년 장경주, 1788년 이명기, 1885년 이한철이 모사할 때까지 4번의 제작사례를 기록하였다. 그 내용은 제작일정 및 제작된 초상의 수, 구본 및 신본의 봉안과정 등을 상세히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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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사상사에서 윤증이 차지하는 비중과 함께 현존하는 장경주와 이명기가 그린 <윤증 초상>은 조선후기를 대표할만한 뛰어난 회화적 격조를 지니고 있어 중요성을 지닌다. 아울러 '영당기적'은 초상화 제작과 이모과정 그리고 세초의 전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보물로 지정 예고된 이들 작품 외에도 종가에는 1919년 및 1935년작 전신좌상 및 소묘초본이 여러 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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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규격(세로x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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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744년작(전신) : 111x81cm(화면), 190.1x101.0cm(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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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788년작 1(전신) : 118.6x83.3cm(화면), 182.2x100.3cm(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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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788년작 2(전신) : 106.2x82cm(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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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상(2점) : 59 x 36.2cm(정면), 59 x 36.2cm(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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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영당기적』 : 36.3 x 26.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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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