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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완주_송광사_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_및_복장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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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완주_송광사_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_및_복장유물 [2025/04/02 04:48]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대한민국:국가유산:완주_송광사_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_및_복장유물 [2025/04/02 04:48] (현재) – 만듦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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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1618685.jpg?400|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 ||
 +| **종목** | 보물 (1997년 08월 08일 지정) |
 +|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소조 / 불상 | 
 +| **시대** | 조선 인조19년(1641) | 
 +| **소유** | 송광사 |
 +| **관리** | 송광사 |
 +| **소재지** |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569번지 송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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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 =====
 +신라 경문왕 7년(862) 도의선사가 창건한 송광사에 모셔져 있는 이 삼불좌상은 본존불인 석가불을 중앙에 안치하고, 오른쪽에는 아미타불, 왼쪽에 약사불을 배치하고 있다. 무량사 소조아미타불상(5.4m)과 함께 가장 거대한 소조불상(5m)으로, 신체 각 부분이 비교적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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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중하고 원만한 얼굴과 두껍게 처리한 옷은 당당한 불상양식에 걸맞는 표현기법을 보여준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 표현은 강한 인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 양식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대적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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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존불에서는 삼불의 조성기와『묘법연화경』을 비롯한 불경류, 후령통(喉鈴筒) 등 다수의 복장품이 발견되었다.『조성기』에 의하면 숭정 14년(인조 5년, 1641) 6월 29일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조속한 환국을 기원하면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명나라와 청나라의 연호를 함께 사용하고 있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당시의 극심한 혼란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난극복의 의지와 역사의식의 반영과 함께 당시의 문화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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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라서 이 불상은 만든 연대가 확실하고 역사 의식이 반영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불상과 함께 복장유물 12종 중 불상조성기 3점과 후령통 3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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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국가유산 문화재}}